꿈을 포기하면 에어컨 소리가 난다 - 아이슬란드 (1)

by 윤담


혀 끝이 닳도록 주창하는 이란 무엇인가. 손에 잡히지 않는 모래와도 같은 것. 잠시 쥐고만 있어도 곱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열 때처럼 마음을 간지럽히는 것. 그럴 재능이 있냐는 물음에 미적미적 망설이다 말끝을 흐리는 것. 그러다 꿈을 포기하는 날엔 에어컨 내지 난방기 소리가 들린다. 위잉위잉- 좁은 방 한가운데서 바람을 쐬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쓴다. 스스로 상자 안에 들어온 듯 여유롭게. 실패의 상처는 꽁꽁 이불속에 숨겨 곪아지도록.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첫날도 그랬다.


3월 말, 독일에 입국한 지 2주째.


종이를 스무 번 구기며 수정했다 해도 믿을 만큼 멋진 계획을 세웠다. 4월 초에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를 볼 작정이었다.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건 3월까지이지만, 막차의 뒤꽁무니를 쫓는 심정으로 비행기를 끊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오로라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잔뜩 부푼 마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야심 찬 계획을 비웃듯 하늘이 얄궂은 변덕을 부렸다.


금일 기상상황으로 오로라 투어가 취소되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투어 버스를 탈 생각이었는데, 시원하게 고꾸라졌다. 일단 이 '오로라'는 쉽게 마주칠 수 없는 환상의 포켓몬이다. 하늘은 흰 도화지처럼 구름 한 점 없어야 하고, 달빛은 거기에 크림색을 살짝 덧바른 것처럼 희미해야 했다. 나의 원대하고도 작은 꿈은 실현되기 무척 어려워 보였다.


픽 쓴웃음을 지으며 손에 쥔 간식을 빼앗긴 표정으로 호스텔로 향했다. 방 안은 기침이 나올 만큼 먼지로 가득 찼고, 창밖으론 포크레인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뭐, 나쁘지 않았다. 내게 숙소란 그저 경유지에 불과하니까. 베개와 이불만 '존재'하면 만사 오케이였다.


'실패 확률이 높은데, 차라리 다른 관광지를 갈까?'

아름다운 꿈이라도 확률 게임이 필요한 법. 반쯤 포기한 상태로 버석버석한 침대에 누웠다. 위잉위잉. 역시나 무기력한 마음에 방의 부피라도 차지하자는 심산으로 털썩 누우면 이 소리가 들렸다. 제법 끈기 있는 나지만, 실패 확률이 높은 경우엔 어떤 꿈이라도 도전하지 않는다. 그게 오로라든, 음악이든, 뭐든. 그러곤 텅 빈 방 안에 누워 이불속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알 수 없는 결의가 꿈틀댔다. 독일 귀국까지 3일이나 남았다. 이왕 멀리 온 이상, 더 물러설 곳은 없었다. 원래 나는 계획에 80분, 우물쭈물하는 데 15분, 실행에 5분을 쓰는데. 무모함과는 동떨어진 내가 갑자기 오로라 투어를 결제했다. 손이 바삐 움직이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확률 계산을 집어던진 무모함. 그건 까끌까끌한 이불도 푹신하게 만들었다.



다음 날, 레이캬비크 버스 터미널.


허름한 터미널 앞에 사람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제야 이곳이 관광지라는 자각이 들만큼 붐볐다. 아이슬란드는 자연이 조금 내어준 자리에 인간이 얹혀사는 느낌이었다. 제 집인 양 터덜터덜 걷는 현지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밤 9시. 추위에 볼이 벌겋게 익을 때쯤,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는 곧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모두 칭찬스티커를 받기 직전인 어린아이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도 미지의 땅으로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과연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


꿈을 향한 무모함은 소리를 냈다. 부릉부릉. 세차고 멋진 엔진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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