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면 피리 소리가 난다 - 아이슬란드 (2)

by 윤담

꿈은 희극명사일까요, 비극명사일까요?

글쎄, 희극명사겠지요. 그걸 이룬 자에겐 피리 소리가 나거든요. 태초의 짜릿하고 희희낙락한 웃음소리. 환영의 실체를 눈앞에 마주한 환희. 마치 오로라를 보고 있는 저 사람들처럼 말이에요.



밤 10시, 투어 버스 안.

겨울은 후퇴하지 않았다. 아이슬란드의 찬 공기가 창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맑은 공기에 노곤한 세포가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창문을 바라보면, 도시의 불빛은 저만치 후퇴하고 있었다. 앞자리에 앉은 부부는 바람막이로 중무장을 하곤 커다란 카메라를 꼭 안고 있었다. 이 순간은 수많은 준비를 거쳐 얻어낸 운명의 순간이겠지. 이윽고, 버스 기사님이 우렁찬 목소리로 마지막 도착지임을 알렸다. 버스가 푸쉬쉭 소리를 내며 멈췄다.


관광객들은 일사불란하게 내려 오로라를 기다렸다. 건물도, 빛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벌판, 어둠 속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고요함. 심장이 뛰는 소리마저 들릴 듯해서 ‘오늘도 실패인가’라는 말이라도 중얼거려야 했다.


그때였다. 귓가에 들려온 '저기 봐!'라는 짧은 외침. 그 한마디가 적막을 몰아냈다

고개를 45도 돌리니 옅은 초록색 줄무늬가 보였다. 처음엔 형체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희미했으나,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일제히 카메라를 들었다. 그 순간, 오로라가 물감이 번지듯 선명해지더니 명멸하는 네온사인처럼 색을 휙휙 바꾸었다. 빨간색, 초록색, 분홍색...


하지만 위엄과 달리 이 장난꾸러기는 내가 점심 메뉴를 고민할 때보다 더 변덕스러웠다. 왼쪽에서 빼꼼, 또 머리 위에서 불쑥. 술래 없는 숨바꼭질을 계속했다. 그러곤 이내 무도회에 온 아가씨처럼 나풀나풀 춤을 추는 것이다. 그 치맛자락이 너무나 아름다워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제야 나는 사진 속 오로라가 담지 못한, 상상 이상의 감동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희열, 열락, 낙관. 우리의 표정을 나란히 이으면 끝말잇기가 완성되었다. 앞자리에 앉아있던 부부는 고대하던 꿈을 이룬 듯 휘파람 소리까지 냈다. 낙관의 다음은 휘파람, 그래 휘파람이다. 무기력하게 들리던 에어컨 소리와는 달랐다. 위잉 위잉의 반의어는 휘이익-이구나. 하지만 나는 괜한 자존심에 속으로 기도를 삼켰다.


꿈은 손에 잡히지 않는 모래와도 같네요. 비가 우수수 내린 뒤 단단해지는 흙과 같아요. 비를 머금은 땅 위엔 오로라가 살고 있었어요. 제 무모함이 여기 닿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부디 포기를 시도할 때마다 이 순간이 날 구해주길.

당신의 마음속엔 무엇이 살까요.
낙관과 낙담을 가르는 무언가가 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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