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좋아하는 그 숫자, 11번

by 윤담
엄마는 11이라는 숫자를 참 좋아한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내 일기장을 읽고 쿡쿡 웃었다. 삐뚤빼뚤한 글씨 위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꾹 찍어주시면서도, 웃음을 끝내 참지 못했다. 도대체 어떤 문장이 선생님을 웃게 했을까. 그날 집에 돌아오면서도 나는 내내 고개를 갸우뚱했다.

계란프라이를 뒤집던 엄마에게 일기장을 내밀었다. 글을 읽던 엄마는 뒤집개를 든 채 그대로 폭소를 터뜨렸다. 의문의 두 번째 문장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엄마는 늘 11번 버스만 탄다.
꼭 11번만.


고작 열 살 남짓, 그때의 나는 알 턱이 없었다. 애초에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는 것을. 마을에 드나드는 버스는 야속하게도 ‘11번’ 단 한 대뿐이었다.

버스는 끝없이 펼쳐진 논 사이를 느리게 가로지르고, 밤이면 그 위로 별이 쏟아지는 시골. 이곳이 내가 나고 자란 곳이다. 하지만 평화로운 풍경과는 달리, 나의 일상은 꽤나 분주했다.


“00아, 빨리 신발 신고 나와!”


엄마와 시장에 가는 날이었다. 버스가 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5분. 이걸 놓치면 꼼짝없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달리기 시합을 하듯 열심히 뛰었지만, 버스는 야속하게도 슝— 지나가버렸다. 숨을 헐떡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 시간. 딱딱한 나무 의자에서 버티기엔 꽤 긴 시간이었다. 그때, 정류장 뒤편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작고 허름한 호빵집이었다.




엄마가 내 입가에 묻은 빵 조각을 떼주었다. 양 볼 가득 단팥을 넣고 우물거리던 나는 그저 따뜻한 맛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다섯 명이면 꽉 찰 만큼 좁은 가게에서 우리 둘은 바짝 붙어 앉아 입김을 불었다. 그 긴 여백이 지루함이 아니라, 엄마와 나누는 달콤한 휴식이었음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제는 하염없이 초침을 세며 기다릴 일도 없다. 서울에서 독립해 살다 보니, 몇 걸음만 나서면 버스가 줄지어 서 있다. 편리함은 늘 좋지만, 어쩐지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너무 쉽게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일부러 틈을 만든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바람의 결을 느끼고,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본다.

그런 순간에만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시내에서 11번 버스를 기다린다. 부모님을 뵈러 가는 길, 정류장 옆 가게에서 다 같이 먹을 단팥빵을 산다. 부스럭— 혹독한 추위를 견디는 마음으로, 묵직한 봉지를 만지작거린다. 옹기종기 함께 움츠려 봄을 기다리는 시간, 그 온기가 사랑의 일면이라 생각하며.


저 멀리서 11번 버스가 천천히 다가온다.

급류 같은 삶에 여백을 주는 그 숫자가, 나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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