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막내딸, 김상추 씨

그의 텃밭 가꾸기 레시피

by 윤담

아빠에겐 세 명의 딸이 있다.

똑 단발에 볼이 새초롬한 언니,

아빠의 둥그런 턱을 똑 닮은 나,

그리고 우리 집 텃밭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막내,

‘김상추’ 씨다.


녀석이 오기 전까지 집안의 사랑은 내 차지였는데. 지금은 저 푸릇한 녀석이 앞마당 상석을 차지하고 있다. 그뿐인가. 깻잎, 가지, 고추까지. 아빠의 자녀들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덕분에 우리 식탁은 국산도 수입산도 아닌, ‘앞마당 산’ 채소로 늘 풍성하다.



하지만 늘 봄이 만개한 건 아니었다. 초대 정원사인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정년에 이른 것이다. 두 분은 지팡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었고, 상추는 시름시름 앓았다.


마당이 꽁꽁 얼어붙은 그때, 구원투수로 나타난 게 바로 아빠였다. 신기하게도 그의 손길이 닿자, 상추는 봄의 에너지를 머금고 다시 깨어났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죽어가는 것도 살려내는 마법 같은 기술. 그런 게 DNA에 새겨지기라도 한 걸까?


“어떻게 키우는 것마다 그렇게 잘 자라요?”


나는 굴러들어 온 막내들에게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고급 비료를 쓰시나, 물맛이 다른가. 그러나 돌아온 답은 예상을 한참 빗나갔다.


“그냥 내버려 두면 돼. 그럼 알아서 자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건 전교 1등이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이 작은 씨앗이 흙의 무게를 이겨내는 일. 그게 얼마나 고단한 일인데.


하지만 그 무심한 한마디가 ‘가장 적극적인 사랑법'이란 걸, 다음 봄이 와서야 깨달았다. 씨앗을 뿌리고도 아빠는 발을 동동 구르는 법이 없었다. 언제 자라나, 언제 싹을 틔우나 보채지 않았다. 문득 조바심에 물을 너무 많이 주어 뿌리째 썩어버린 내 화분이 떠올랐다.


아빠는 알고 있었던 거다. 여린 풀잎도 저마다의 시간과 노력을 먹고 자란다는 것을. 우리의 일은 가끔 물을 주며 은은한 미소를 짓는 것임을. 물을 줄 타이밍만큼이나, 내버려 둬야 할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몇 달 후, 상추들은 내 손바닥만큼이나 자랐다. 두 계절의 하늘빛을 온전히 머금은 채.



장하다. 마침내 흙의 무게를 이겨내리라는,

두터운 믿음 위에 피어났구나.



녀석들은 따뜻한 무관심 속에서

그렇게 여름을 나고 있었다.


'내버려 둔다'는 말이 방관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서 늘 가만두지 못했다. 그 조급함 탓에 축 시들어버린 나의 행운목에게 미안해졌다. 하지만 이제 여름에 만개한 녹음을 보고 안다.


사랑이란 당신이 자라나는 힘을 믿어주는 것. 한 발짝 뒤에서 어깨너머로 웃음 짓는 것. 그 대상이 사람이든 일이든, 그게 무엇이든 마찬가지 아닐까.


오늘은 한번 흘러가는 대로 둬보기로 한다.

그것 또한 가장 능동적인 사랑 고백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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