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호떡이 따뜻한 음식인 줄 몰랐다. 어른이 되어 입천장을 호되게 데고 나서야, 비로소 ‘계절감’이라는 단어를 이해했다. 누군가는 호떡이라 하면 갓 구운 설탕의 향을 떠올리겠지만, 내 기억 속 호떡은 사뭇 다른 식감이었다.
바삭-
어린 날의 나는 참 속도 없었다. 그게 다 식어 버린 줄도 모르고, 늘 한 봉지를 게 눈 감추듯 비워냈다. 알싸하게 감도는 향이 좋아서였을까? 아니, 그건 매개에 불과했다. 내가 정말로 기다린 건, 내 이름을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였다.
“00아, 네가 좋아하는 거 사 왔다-”
할아버지. 늘 양손 가득 호떡을 사 오던 나의 할아버지. 당신은 시장에 다녀올 때면, 신발을 벗기도 전에 내 이름부터 부르셨다. 내가 환호성을 지르며 봉지를 받아 들면, 당신은 투박한 사투리로 넌지시 물으셨다.
“이게 그렇게도 맛나냐?”
하지만 뜨거운 사랑도 물리적 거리는 이기지 못했던 모양이다. 시장에서 우리 집까지는 꼬박 한 시간.
고개를 하나 넘을 때마다, 말랑하던 호떡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어떨 땐 꽈배기, 어떨 땐 붕어빵. 하나같이 계절감이 없었지만, 나는 늘 기다렸다. 봉지를 건네는 당신의 따스한 손길을.
"이거 보세요! 제가 만들었어요."
사랑은 받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나는 미술 시간에 만든 작품들을 할아버지께 가장 먼저 보여주곤 했다.
고사리손으로 조물딱거린 클레이 인형. 삐뚤빼뚤한 눈코입, 울퉁불퉁한 손자국. 마치 공장에서 도망 나온 못난이 인형 같았다. 그러나 당신의 감상평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아이고, 잘했다. 우리 손주, 참 잘했어.”
당신은 그 인형을 선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두셨다. 먼지 하나 앉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내가 만든 건 무엇하나 버리지 않고 모으셨다. 그 낡은 선반 위, 그곳이 할아버지의 루브르였다.
하지만 잔인한 건, 감사함에도 ‘역치’가 있다는 사실이다. 지구가 도는 것을 잊고 살듯이, 나는 그 넓은 사랑에 무뎌지기 시작했다.
“저 공부하러 들어갈게요”
시간이 흘러 난 수험생이 되었다. 세상의 중심은 가족에서 성적으로, 그리고 친구로 옮겨갔다. 할아버지와 식탁에 마주 앉아도 5분을 채 넘기지 못했다.
“그려, 피곤해 뵈는구먼. 잠은 꼭 제때 자야 혀.”
붙잡지 못해 흐릿해진 말꼬리. 그럼에도 손녀를 걱정하는 눈빛. 부엌에는 당신의 숟가락 소리만이 남았다. 그 외로운 쇳소리를, 모른 체했다.
조금만 더 마주 볼 걸, 조금만 더 살가울걸.
시장에 심부름을 다녀오고 나서야 그날을 후회했다. 양손 가득 들린 고사리가 꽤 묵직했다. 길을 건너고, 버스가 덜컹일 때마다 그 무게는 100그램씩 늘어나는 것 같았다.
하얀 입김을 내쉬며 현관 앞에 섰을 때, 문득 가슴이 아려왔다. 그제야 와닿았던 것이다. 이 모든 수고가 나의 미소 하나에 녹아내리던, 당신의 에누리 없는 사랑.
당연한 오늘이 당연하지 않음을 안다. 내가 딛고 서 있는 땅이 사실은 당신의 보드랍고 두터운 사랑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나는 결심한다. 조금 더, 조금만 더 당신과 마주 보기로. 시간이 더디 흐르길 바라며. 당신의 유한한 미소를 오래오래 눈에 담기로 한다. “사랑해요”란 말이 어려운 부끄럼쟁이에게, 늘 밑지고 보는 미소를 말이다.
누군가 내게 호떡의 계절을 묻는다면,
나는 나지막이 대답할 것이다.
그건, 결코 계절을 타지 않는 음식이라고.
자글자글 주름이 진건,
아마도 누군가의 마음을 지켜내느라
제 온기를 다 써버린 탓일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