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도 제때 안 오면 재앙이다

by 윤담

2장. 친애하는 나의 올가미에게


“못 돼먹은 XX들, 세상이 말세여!”


할아버지가 꽃무늬 이불을 걷어찼다. 뉴스 속 앵커는 건조한 목소리로 ‘납치’, ‘감금’ 따위의 단어를 뱉고 있었다. 그의 미간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저 가여운 사연이 남 일 같지 않았던 걸까. 천진하게 귤을 오물거리는 손녀를 보며, 할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윤아. 절대, 절대 밤에는 혼자 돌아다니지 마라.”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뉴스는 그의 미소마저 일그러트리는 유해 매체가 분명했다.


아빠도 수심이 가득했다. 종종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고장 난 가로등에 대해 민원을 넣겠다 했다. ‘내버려 둠’은 안전의 영역에선 효력이 없는 것일까. 그들의 나무뿌리 같은 보호본능은 아무도 꺾을 수 없었다.


그날부로 우리 집 여자들에겐 철칙이 생겼다.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귀가할 것.



어스름 땅거미가 진다.

> 나는 운동장에 널브러진 신발을 급히 줍는다.

> 엄마는 강의가 끝나자마자 빠르게 가방을 싼다.

> 언니는 아예 집을 떠나 학교 기숙사로 이주한다.

> 할머니는 마른 입술로 마당을 서성인다.

> ‘더 놀고싶어요’란 말은 금기다.



이 숨 막히는 숨바꼭질은 내가 열아홉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동시에 거짓말도 생존 본능처럼 늘어갔다.


지잉 지잉-

휴대폰 진동 소리에 숨이 턱 막혔다. 주머니를 만지작 거리며 가로등 아래 섰다. 친구 집에서 잔다하고 시내를 서성이던 참이었다.


시내의 밤은 시골의 밤보다 더욱 환했다. 명멸하는 네온사인으로 해의 뒤편을 상상했다. 언젠가 홀로 밤을 견딜 날이 올텐데. 당장은 할 수 있는 말이 ‘네’ 밖에 없어 서글펐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하는 순간

진동이 뚝- 멈췄다.



달아나자. 친애하는 나의 올가미로부터.

나의 하나뿐인 둥지를 미워하지 않게끔.



그렇게 스무 살이 되던 해,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 상경했다.


나의 ‘늦된 사춘기’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자주, 그리고 많이 마셨다. 해의 뒤통수를 들추는 건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술병으로 볼링핀을 세우며 친구와 볼이 벌게질 때까지 웃었다. 여느 스무 살의 치기였지만, 부모님의 전화를 피했다는 점이 달랐다. 부재중 알림이 쌓여도 답장하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 전화를 받으면 “바빠요” 한 마디로 응수했다.


진동 소리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드디어, 온전한 자유인가.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사춘기도 제때 앓지 않으면 재앙이라는 것을.




“나영아… 나영아?”


달조차 뜨지 않은 어느 날, 친구가 사라진 건 순식간이었다. 함께 잔을 기울이던 나영이가 보이지 않았다.

쿵, 쿵, 쿵. 다른사람들이 웃는 소리가 심장 박동과 섞여 어지럽게 울렸다.


친구를 찾으려 비틀거리는 순간, 등 뒤에서 서늘한 기척이 느껴졌다.


탁.

거친 손 하나가 내 손목을 덥석 낚아챘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찰나.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다름 아닌 아빠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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