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알지 않으면 모른 만큼 당하며 배울 수밖에 없다
호구는 바둑에서 돌 세 점이 둘러싸고 한쪽만 트인 자리를 뜻하며, 이 자리에 돌을
두면 바로 잡혀 먹히는 위험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이로부터 유래해,
현실에서도 쉽게 속거나 이용당하는 사람을 '호구'라고 부르게 되었다.
[네이버 국어사전 발췌]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한 번쯤 아동복 매장을 꿈꿔봤을 것이다.
내 눈엔 콩깍지가 씐 듯, 점점 더 예뻐지는 아이를 볼 때마다 정말 내가 낳은 게 맞나 싶을 때가 많았다.
주변에서도 아역 배우나 모델을 시켜보라는 말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솔깃한 마음이 스쳤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연예인이란 아무나 되는 게 아니고, 그만한 시간과 돈도 필요했다.
그렇게 흘려보냈던 아쉬움은 우연히 보게 된 한 줄의 광고로부터 곧 욕심으로 바뀌었다.
아동복 체인 사업의 매력 중 이 3가지가 나를 설득시키기에 이미 충분했다.
- 200만 원이 채 안 되는 가맹비
- 1장의 주문도 OK & 제품 상세 이미지 제공
- 가사와 육아를 병행하며 재고를 두지 않고 (1 : 1 오더 방식) 운영 가능
'샘플 사입한 건 우리 송이 입히면 되지'라는 지극히 나만의 합리화된 생각으로 내 손엔 이미 계약서가
쥐어 있었다.
작은 온라인 사업이었지만 콘셉트에 맞는 상호와 로고를 직접 구상하고 제작에 맡기며 진심을 다해 준비를
했다. 거래처에서는 상품 이미지를 제공해 주었는데 조건이 하나 있었다.
해당 옷을 먼저 사입해야만 이미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SNS 메인에 다양한 상품을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조금 무리를 해서 사입을 진행했다.
그런데 막상 받아본 이미지에는 거래처 상호명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사실 눈치 빠른 엄마들이라면
그 상호만으로도 검색해 그곳에서 바로 구매할 수도 있다. 나는 몹시 찝찝했다.
곧바로 거래처에 상호명이 들어가지 않은 이미지를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지만,
“계약된 모든 가맹점이 동일한 조건으로 진행된다”며 임의로 가리거나 편집은 안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건 뭐지? 나 호구된 거야?'
꼼꼼히 확인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런 것조차 알지 못한 채 시작해 버린 일이었다.
시작부터 삐걱거리는 기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어야 했다.
그래서 제공되는 이미지는 가급적 쓰지 않기로 하고 직접 촬영을 하기로 했다.
그때 우리 집은 16평 남짓, 거실 겸 안방 하나에 작은 주방과 복도 쪽 방이 전부라 촬영 공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결혼 전 큰맘 먹고 사두었던 디지털카메라가 그나마 유일한 장비였다.
급한 대로 벽을 가릴 배경 천과 바닥에 깔아 둘 작은 카펫만 주문하고 소품은 집에 있는 것 중 몇 가지를
사용했다. 그것만으로도 매일 작은 촬영장을 꾸리듯 설레는 기분이 있었다.
사입한 옷들이 도착하면 이리저리 코디를 해두고 하원하는 아이를 기다렸다.
다행히 아이는 처음엔 잘 따라주었고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이 내가 올린 사진을 보고 옷을 사주며 응원을 해준덕에 초반 매출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1:1 주문 방식은 생각보다 번거로웠다. 내가 계약한 곳은 중도매였고 그들 역시 원도매에서 물건을
받는 구조였다. 결국 고객에게 옷이 도착하기까진 적게는 5일~7일, 길게는 열흘이 걸리기도 했다.
그래서 늘 고객에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시간이 조금 걸릴 거예요.”
사실은, 기다림을 설득할 만한 그럴싸한 단골 멘트였던 셈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언제쯤 배송이 될지 확신이 없었다. 배송에 대한 미안함이 하루치 피로처럼 쌓여갔다. 잘 나갈만한 상품을 예측해서 미리 사입을 해두면 되는 나름의 방법도 있는데 간이 콩알만 한 나는 혹시나 남을 재고에 대한 우려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다.
기다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 역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깜빡하는 일이 많아지고,
아이 물건을 촉박하게 챙기는 날도 잦았다. 그러니 다른 엄마들도 기다림이 길어지면 답답하고 불안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잘 알면서도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새 옷이라며 좋아하던 아이도 점점 힘들어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업체 이미지를 써야 했다.
예감했던 일들이 하나둘 현실이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주문 취소가 조금씩 늘기 시작했고 클레임이 이어지면서 매출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렇다고 사입을 안 할 수도 없었다. 매출 증가는커녕 마이너스가 지속되었다. ‘사업’이라는 건, 하고 싶은 마음만으론 버틸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러던 중, N포털 카페에서 아동복부터 신발, 잡화, 성인 의류까지 수많은 중도매 업체가 모여 있는
도매 카페를 알게 되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가입도 무료였고 소매 사업자 인증만 하면 거래 방식도 복잡하지 않았다.
상품 이미지는 하루에도 수백 장이 넘게 올라왔고 모두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예전에 이미지를 받기 위해 사입했던 옷들이 떠올라 허탈한 웃음이 났다.
무엇보다 업체들과의 소통이 훨씬 빠르고 자유로웠다.
몇 달 전 내 손에 쥐어졌었던 가맹 계약서는 이제 하찮고 초라한 종이에 불과했다.
더 이상 그곳과 가맹을 유지할 명분이 없어졌음을 확신한 순간, 그 종이는 내 손에서 찢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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