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분명한 것 같다. 신은 짓궂다
순서도, 계획도 없었지만 그 아이가 온 순간부터 우리의 관계는 더욱 명확해졌다
우리 집 미모 담당인 첫째는 출생에 비밀이 있다.
우리 부부의 결혼사진에는 첫째 아이가 있다. 사실 이 아이는 우리가 준비해서 맞이한 게 아니다.
남편과 연애 중에 갑자기 찾아온, 말 그대로 덜컥! 생겨버린 아이였다. 보통 이런 경우 다투는 커플도 많고 극단적으로 이별까지 가기도 한다는데, 나는 내가 임신인 걸 안 순간에도 놀람은 잠깐이었다. 그때 알았다.
이 사람에 대한 내 믿음이 컸다는 것을... 연인으로 만난 지 고작 7개월인데 말이다.
아마도 다년간의 연애와 이별이라는 경험을 통해, 사람 볼 줄 아는 나만의 스킬이 쌓여왔었나 보다.
그때까지도 나는 언니집에 하숙생처럼 얹혀살고 있었다. 임신이라는 내 전화를 받던 그 날밤,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언니집에 찾아왔다.
잔뜩 긴장한 표정에 괜히 나까지 졸았다. 그날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다 보면 남편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내 전화받고 무슨 정신으로 일을 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난다고 하니 다시 생각하니 나도 참 아찔하다. 언니와 형부는 그동안 몇 번 봐온 남편의 모습을 좋게 보고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된 게 부부의 연이 되려나 보다라며 가족으로 인정해 줬다. 그리고 그 주말에 내 부모님이 계시는
지금의 처가로 가서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고 허락을 받았다.
나와 만나는 7개월 동안 남편은 가족들에게 여자친구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남자들은 보통 그런다고 한다. 보여주는 순간 귀찮아진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결혼에 대한 계획이
없던 때라 그걸 이해 못 하는 나는 아니지만 이번엔 어쩔 수 없게 되었다.
나를 소개하는 첫 만남이 합가 전의 상견례가 돼야 하는 사고를 쳤으니 남편도 할 말이 없지.
남편 쪽은 막내 누나와 작은 형이 나오셨고 우리 집은 아빠, 엄마, 언니네가 함께 했다.
우리 나이 되면 속도위반은 흉도 아니라서 그걸로 양가가 서로 난색 할 건 없었다.
그때 나는 직장 들어간 지 1년밖에 안되기도 했고 남편도 아파트를 전세로 들어가느라 여윳돈이 부족했다.
그래서 우리는 굳이 무리해서 결혼식을 치르고 싶진 않았다.
남편과는 얘기가 된 상태라 양가 어른들께도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 추후 날이 잡히는 대로 알려드리겠다고 하니 모두 수긍을 해주셨다.
우리의 신혼 생활은 남편 혼자 살고 있는 집에서 소박하게 시작되었다.
앞 화에서 잠깐 언급했던 16평, 그 집이다. 남편이 쓰던 것 중 TV와 TV장, 세탁기는 그대로 쓰고 커튼과
이불, 옷장, 냉장고, 밥솥, 주방식기 정도만 새로 들였다. 집이 작으니 큰 살림살이가 굳이 필요 없다.
이렇게만 해도 영락없는 신혼집으로 충분했기에 남편과 나는 만족했다.
환경이 달라졌음에도 나는 그 집에서의 적응이 완벽하게 끝났다. 며칠 후, 남편이 동네 금방을 데려갔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그래도 같이 살면서 울 마누라 반지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맘에 드는 반지 골라봐. 이거라도 해줘야 내가 마음이 놓일 것 같아."
"그럼 오빠 것도 같이 해야지. 나만 하면 무슨 의미가 있어?"
"알잖아, 내가 하는 일이 예민한 기계 다루는 일인 거.. 반지 끼면 일하는데 불편해서 안 끼는 게 나아.
커플링은 나중에 우리 결혼식 때맞추고, 오늘은 각시 것만 사자"
나는 남편의 말에 수긍했고 내 취향에 맞는 심플한 디자인을 골랐다. 두 줄의 얇은 물결무늬가 겹쳐진 작은 14k 반지. 껴보니 내 손가락에 딱 맞다. 남편은 괜히 내가 눈치 보며 비싼 거 고르지 못했을까 봐 더 적극적으로 골라 주었지만 나는 이 반지가 좋았다. 14년이 지난 지금 나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엔 아직도 그 반지가 끼워져 있다. 결혼식 땐 트렌드에 맞는 커플링을 맞췄지만 반지가 커지니까 오히려 무겁고 그 유행이 지나니 예쁜지도 모르겠더라. 나중에 아파트를 넓은 평수로 이사하면서 미련 없이 팔고 살림에 보탰다.
그 커플링은 우리와 인연이 아니었던 거지.
이듬해에 오매불망 기다린 첫째를 안았다. 6월에 태어난 아이는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만 여름을 나야 했다.
몸 곳곳에 울긋불긋 나던 태열은 쉬이 가라앉질 않았다. 주말마다 시원한 계곡을 찾아 나섰다.
바람이 시원한 건지 물소리가 좋았던 건지 아이는 쌔근쌔근 잠을 잘 잤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빠 닮아 나오라고 줄곧 가스라이팅?을 한 덕분에 아이는 정말 아빠를 빼닮았다.
코에 줄이 있는 것도 닮았다. 남편이 신생아실에 갔는데 처음부터 코가 먼저 보였다고 한다.
신생아인데 줄이 있다며 어찌나 신기해하던지.. 큰 딸이 아빠를 닮으면 잘 산다는 옛말에 새삼 기대를 해본다.
우리 첫째 딸 아니었으면 남편과 나는 어쩌면 연애하다 헤어졌을 수도 있다.
만남에 대해 서로가 진지하게 얘기하던 때가 있었는데 만약 우리가 결혼을 한다면
2년 동안은 열심히 돈 모아서 하자고 했었다.
그 2년 동안 우리가 별일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을까? 사실 그때 나는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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