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한 새옹지마

8화 - 저의 찐 경험입니다

by 사월


나도 이만큼 인생을 살다 보니 나에게도 풀리지 않거나,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일이 갑자기 잘 풀렸던 경험이 크게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남편을 통해, 또 한 번은 나를 통해 겪어본 정말 찐 경험이었다.

옛날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일들을 겪었길래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들을

남겨놓았을까? 그런 말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쓰일 거라 생각은 했을까?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이 될 남편의 공장은 결국 문을 닫았다.

이제 남은 건 갚아야 할 대출 원금 1억, 그러려면 기계도 처분해야 하고 받지 못한 미수금도 해결해야 했다. 몇 천만 원짜리 기계를 처분한다 해도 이미 생활비로 사용한 부분은 오롯이 우리가 메꿔야 한다.

제조업 경기가 너무 불황인 때라 선뜻 기계를 사들일 곳이 없는 상황에 일단 미수금이라도 어떻게 받아보자는 마음이 앞섰다. 남편은 차마 거래처 사장에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쪽도 상황이 어렵기는 매한가지라 생각해서다.


"오빠,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해? 우리 코가 석자야, 빌려준 돈 달라는 것도 아니고

오빠가 힘들게 일해준 값인데 당연히 줘야 하고 우리는 받아야 맞지!

연락처 줘봐! 오빠가 못하면 내가 해볼게."



솔직히, 내가 남편의 입장이었다면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일이라는 게 다들 건너 건너 연결된 사람들이라 나중을 생각하면 함부로 나설 수 없었을 테니까. 조금 선을 넘더라도 남편이 아닌 내가 나서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거래처 사장님께 문자를 남겼다. 연락이 없으면 다음 날도, 또 연락이 없으면 그다음 날도 남겼다. 전화를 할 수도 있었지만 말이라는 게 생각과 다르게 튀어나갈 수도 있고 즉각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장님께도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마음 같아서는 아닌 건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최소한의 구구절절한 비굴함을 선택했다.



2주 정도가 지났을까. 드디어 거래처 사장으로부터 돈이 들어왔다.

동시에 남편에게도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옆에서 흘겨보니 네 와이프가 하도 문자를 보내와서 안 주면 공장까지 찾아 올 기세라며 다른 곳 제쳐두고 준다는 식의 메시지였다. 미안하다는 말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어쨌든 받아야 할 돈을 받고 나니 남편과 나는 그제야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어떻게 이걸 해결했냐며 각시 최고라고 나를 향한 남편의 엄지 척에 내 어깨가 으쓱해졌다.

이제 하나는 해결되었으니 다음은 가장 골치인 기계 처분이다.



이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남편은 대형 기계만 전문으로 소싱해 주는 곳에 의뢰를 해두었으니 기다려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은 만큼 언제가 될지는 답이 없는 셈이다.

공장을 닫았단 소식은 주변으로 알음알음 퍼져갔다. 어쩌면 그게 더 나을 수도 있다.

남편이 성실하게 일을 잘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니까 어디든 연락이 오겠지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던 중 거의 동시에 두 곳에서 연락이 왔다. 한 곳은 남편의 전 직장에서 과장님이 찾아오셨고, 한 곳은 남편 공장 인근에서 큰 공장을 운영하던 사장님이었다. 남편은 전 직장의 재입사 제안을 단번에 거절했다.



남편이 그곳을 나와 첫 사업을 시작하고 맞이한 힘든 시기에 일 좀 줄 수 없겠냐고 두어 번 찾아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사장의 나 몰라라 하던 모습에 실망과 상처가 굉장히 컸다고 했다.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내 남편.. 알게 모르게 많이 애썼다는 걸 알고 나니 더 마음이 아팠다.


"잘했어 잘했어! 그런 회사는 안 가는 게 맞지! 우리 서방 잘했네~"



인근의 공장을 운영 중인 사장님은 남편이 처분하지 못했던 기계를 인수해 주겠다고 하셨다.

그 대신 3년은 퇴사 안 한다는 조건도 함께.. 우리 입장으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는 좋은 조건이라서 남편도

내심 수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그 제안이 감사했던지 입사하기로 결정했고 가장 크게 걱정했던 문제가 이렇게 해결되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다. 미수금에 이어 직장도 구해지고 동시에 기계 인수까지 1억이라는 빚에서 우리가 갚아야 할 돈은 3천으로 줄어들었다. 남은 돈은 앞으로 생활비를 바짝 아껴 다달이 갚아 나갈 방법 밖에 없었다.



남편은 더 쉴 수 있는 여유를 포기하고 새로운 곳으로 출근을 했고 지금까지 7년째 성실하게 근속 중이다.

다시 사원부터 시작해 주임을 달고 대리 - 과장에 이어 작년엔 김 부장이 되었다.

나는 그 사장님을 우리 남편을 위기 때 살려준 은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남편에게 한번 더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한다. "오빠 사장님한테 잘해~"



그리고 1억의 빚은 오래 지나지 않아 일시 상환으로 깔끔히 정리되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특구 개발사업이 발표되었는데 돌아가신 아버님의 논이 그 예정지에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개발 시기는 불확실했고, 우리는 그저 잊고 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보상금이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게 마침 우리 부부에게 3천만 원의 빚이 남아 있던 시기였던 것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둘째가 태어나기 직전, 아파트 이사를 결정했을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어머님의 집터가 갑자기 팔리며 대출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돌아가신 시부모님이 모든 걸 내어주시며 막둥이를 도와주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가슴 한구석이 괜스레

찡했다. 정말이지 살아보면 살아볼수록 인생은 쉽게 헤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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