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 그르지 마라, 그거 제일 치사하다
인생은 웃으면서 선물을 주다가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가져간다. 그리곤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남편의 폐업과 재취업, 그리고 대출 상환까지 닥쳐왔던 위기들이 하나씩 정리되며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 갈 무렵, 나도 틈틈이 취업 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기혼자라는 이유로, 자녀 유무에 따라
면접에서 떨어지는 일이 많았다. 가끔 운 좋게 합격하더라도 막상 출근해 보면 공고에 적힌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시키곤 했다. 그중 하나가 한 건축사 사무소였다.
‘여사무직 보조, 자차 소유자 우대(외근 있음), 기혼자 우대’ '9시~17시 근무'
건축사 사무소라는 생소한 환경에 대한 관심도 있었고 특히나 퇴근 시간이 너무 의외였다.
아이 엄마를 배려하는 건가? 하는 기대감으로 지원했다. 면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합격 연락이 왔고,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다. 하지만 첫날부터 눈살이 찌푸려졌다.
대표실 테이블 위엔 담배꽁초가 수북했고, 사무실 안은 밤사이 그 냄새로 가득했다.
담배 자체를 싫어하진 않지만, 이건 좀 충격이긴 했다.
남편도 내가 임신한 후로 담배를 끊었기에 그 냄새에서 벗어났다고 느끼며 살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매일을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숨이 막혔다.
직속 선임인 여실장이 말했다.
"제가 건축사님께 기혼자 뽑자고 했어요. 어린 사람들 뽑아봤는데 일도 못하고 근태도 엉망이고 해서요.
이력서 보니 직장 생활을 꽤 하셨더라고요."
"아~ 그러셨어요? 감사합니다. 제가 건축사 사무소는 처음이라 잘 가르쳐주세요."
"제가 웬만한 건 다 하니까 일은 천천히 시간 되는대로 알려드릴게요, 일단 대표실 청소 먼저 하시겠어요?"
그랬다. 첫날부터 내 업무는 청소였다.
'그래, 뭐 사무실 청소하는 것쯤이야.. 안 해본 것도 아니고.. 일단 하자.'
알고 보니 기존 여직원은 온전히 사무일만 담당하고 11시 출근해서 오후 3시면 퇴근을 한다.
여기에서 내 역할은 외근을 포함해 청소, 직원 점심 배달 챙기기, 대표의 개인적인 심부름까지 해야 하는
잡일에 가까웠다. 직원들은 새로 들어온 나를 대놓고 무시한 듯했고 점심시간에도 자기들끼리만 식사했다.
나의 선임은 일찍 퇴근을 해서 그런지 점심을 먹지 않는다. 2주쯤 지났을까.. 한 남직원이 먼저 말을 걸어줬다.
“같이 먹어요.”
직원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들어보니 나보다 앞서 이 자리로 들어왔던 사람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뒀다고 했다.
'아.. 그래서 나한테도 그렇게 대면대면했구나...' 오해가 조금 풀어질 찰나에 다시 대화가 오갔다.
"일은 할만해요?"
"어..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지금 좀 애매하긴 해요.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요.."
"그래요.. 아니다 싶음 생각 잘해보세요.. 저희는 거의 밤늦게까지 야근이라 디자인실에만 있거든요.
여긴 저희가 알아서 청소하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그 말이 나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인지 나도 곧 그만둘 것 같아서 하는 말인지 알 순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내키지 않은 2주를 보내고 3주 차가 되던 어느 날, 퇴근을 하려는데 갑자기 비가 많이 내렸다. 다행히 멀지 않은 위치에 주차를 해놓아서 뛰어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대표가 점심도 못 먹었다며 김밥 심부름을 시켰다. 하필 사무실에서도 보이는 우산이 없었다.
지금 밖에 비가 많이 오는데 우산이 없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짜증은 났지만 어쩔 수 없이 사무실을 나섰다.
근처 분식집은 오르막길에 있고 도보로 왕복 8분 거리다.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김밥을 사러 뛰는 내 꼴이,
내 감정이 썩 좋을 리가 없다.
그리고 디데이가 오고야 말았다. 선임은 연차로 출근을 하지 않았고 대표가 사무실에 있던 날이다.
청소를 하려고 바닥을 쓸 제스처를 취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두 발만 꼴사납게 쳐들었다.
한 손에는 담배를 쥐고 TV를 보면서 말이다.
그날 오후, 외근을 다녀오니 대표는 자리에 없었다. 사직서를 올려두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출근하고 3주를 버틴 내 자존심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전에도 나를 하찮게 대하는 곳들이 있었다 보니 그동안 쌓였던 설움이 터진 것이다.
엄마와 남편은 같이 욕해주며 잘했다고 그냥 일하지 말고 쉬어라고 다독여 줬지만 내 마음은 쉽게 회복이
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가면 우울증이라는 걸 겪었던 것 같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보였지만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의 역할만으로는 채우지 못했던 공허함이 마음 깊이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더 답답했던 건 그 공허함이 왜 생겼는지도 모르겠고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는 한동안 다시 집에만 있었다. 무미 건조했던 그날도 의미 없이 핸드폰만 보고 있는데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초였다. 내가 알던 초는 제사 때 쓰던 하얗고 길쭉한 모양이거나 둔턱 한 유리병, 컵에 담긴 단순한
모양이었는데 화면 속 초는 달랐다. 아기자기한 꽃과 어우러져 순수하고 로맨틱한 느낌에 마음이 끌렸다.
그것은 ‘캔들 공예’였다. 최근엔 이런 감성적인 핸드메이드 공예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비누, 향초, 석고 방향제, 디퓨저, 레진, 마크라메, 수제종이, 라탄 등등 공예의 세계가 이렇게나 다양할 줄은 몰랐다. 손으로 만들어낸 작은 것들이 예쁘고 귀여워 눈을 떼기 어려웠다.
누군가의 일상이 되고, 그게 또 하나의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본다는 게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내 시간이 그리워졌다. 아니 찾고 싶어졌다.
구독과 ♥는 작가로서 저의 성장 과정을 지켜봐 주는 따뜻한 눈빛 같습니다.
글의 가치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질수록 브런치는 더욱 빛 날 겁니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