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내겐 너무 어여쁜 캔들
국민학교 6학년 시절, 이사 간 동네에 같은 반 친구 엄마가 운영하던 수예공방이 있었다.
가게를 지나칠 때마다 유리너머로 직접 뜨신 제품들을 볼 수 있었는데 아기 옷부터 성인 옷, 모자, 가방,
장갑, 테이블보, 가리개커튼, 밥통덮개, 갑 티슈커버 등등 아주머니는 못 뜨는 게 없으신 것 같았다.
미용실 다음으로 동네 아주머니들의 사랑방이었던 모습이 기억 한편에 남아 있다.
캔들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보고 또 봐도 어여쁘고 귀엽기도 하고 그냥 기분이 봄바람처럼 따스해졌다. 그렇다고 섣불리 뭔가를 시작하고 싶다거나 배워보고 싶다고 남편에게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실패라는 상처가 우리 둘 단에게 아직 남아 있었으니까. 그리고 남편에 대한 나의 미안함도...
캔들에 대한 관심이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게 했다. 블로그를 뒤져보고 유튜브를 찾아보고 있는 나에게 엄마가 다가왔다.
"이게 뭐야?"
"응.. 캔들이야. 초! 초! 되게 예쁘지?"
"이게 초라고? 어쩌고 이러고 만든데? 이쁘네~"
"캔들 공예라고 하는데 요즘 이런 거 배울 수 있는 공방들이 있데. 자격증 따면 학교 같은 곳 수업도
나가고..공방 차려서 수강생 가르칠 수도 있고.. 근데 배우려면 뭐든 돈이지.. 백만 원도 넘게 들어.
자격증 따려면.. 너무 비싸.."
며칠 후, 엄마가 다시 나에게 왔다.
"그거 해볼래? 캔.. 캔 뭐시기, 초 만든다며"
"캔들? 됐어~ 비싸다니까.."
"얼만디야?~"
"150만 원, 근데 이거 딴다고 바로 써먹는다는 보장도 없어."
"......"
"한번 해봐, 엄마가 해줄게.. 배워서 못써먹으면 어쩌야? 말지 뭐~
엄마가 해준다는데 김서방이 뭐라 할 라디?"
누구보다 현실적인 엄마의 입에서 해보라는 말이 나와서 놀랐다. 망설임으로 눌러놨던 마음이 그 순간,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엄마는 내 속을 다 알고 있었던 거다.
나는 신이 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엄마도 그런 날 보며 마음이 놓이셨는지 얼른 알아보라며 재촉을 하신다.
욕심 같아선 서울로 가서 배우고 싶었지만 하루 만에 배울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교통비까지 생각하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비용을 아끼는 선에서 같은 지역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공방을 찾기로 했다. 커리큘럼이 같더라도 공방마다 작품의 퀄리티나 분위기가 다르다 보니 내 마음이 끌리는 곳을 찾는 데도 며칠이 걸렸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서 분위기와 감성이 잘 맞는 공방을 찾을 수 있었다.
무작정 자격증반을 끊기보단 먼저 체험을 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선생님께 문의해 일정을 잡고 원데이 클래스를 예약했다.
손꼽아 기다린 날이 왔다. 엄마도 함께 보면 좋을 것 같아 사전에 공방 선생님께 양해를 구했다.
문을 여는 순간, 은은한 향이 퍼져왔다. 12평 남짓한 공간은 공방의 쓰임에 맞게 곳곳이 잘 정리된 깔끔한
인상을 받았다. 벽면에 가지런히 세워진 선생님의 자격증과 수료증들이 빛나 보였다, 선반 위를 장식한 캔들과 비누, 디퓨저, 석고 작품들, 주변에 잘 정돈된 도구 하나하나에도 선생님의 감각과 정성이 느껴졌다.
'공방에 진심이시구나.. 공방 선택을 잘한 것 같아'
수업 준비를 마친 테이블을 보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그날은 캔들 공예의 가장 기본이라 불리는 베이식 유리컵 캔들과 작은 티라이트 캔들을 만들었다.
여러 향 중에서 마음에 드는 향과 색을 넣어 마지막에 취향껏 꽃을 장식하면 완성되는 캔들이었다.
화이트 초콜릿처럼 생긴 재료가 왁스인데 스테인리스 비커에 담아 핫플레이트 위에서 녹여 준다.
왁스가 녹는 동안 용기에 심지를 붙여주고 향과 조색할 색상을 선택한다. 녹은 왁스는 마치 식용유 같은
제형이 되는데 색과 향을 섞어줘야 하기 때문에 종이컵에 먼저 계량해줘야 한다.
*액체화 된 왁스는 뜨거우니 꼭 조심해야 하는 주의점이 있다.
색과 향이 섞인 왁스는 온도가 알맞게 내려가야 용기에 붓기 좋다. 그 모든 과정이 다 계산되어 있다는 게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신기했다. 원데이 클래스가 보통 두 시간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왁스가 굳는 시간까지 포함되어 있는 거다. 기다리는 동안엔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자격증반 수업에 대한 궁금증, 공방 운영 이야기, 그리고 내가 오늘 이곳에 오게 된 이유까지.
그러다 보니 어느새 왁스는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마지막 과정은 캔들 위에 꽃을 장식하는 일이다.
사실 실용적인 부분만 본다면 꼭 필요한 과정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식도 눈으로 먼저 맛을 보듯, 캔들도 그 위에 감성 한 스푼이 얹히면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 같았다.
처음엔 모든 것이 조화롭기란 어렵다. 그래도 잔뜩 긴장해서 만든 첫 작품치고는 제법 괜찮았다.
딸이 만들었다고 예쁘다며 칭찬 일색인 울 엄마, 그렇게 나는 나의 첫 캔들을 만났다.
완벽하지 않은 게 나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그 후로 자격증반 수업을 시작했고 선생님은 다양한 캔들 기법을 가르치며 창작의 즐거움을 느낄수 있게 해주셨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씩 기대가 생겼다.
한 달여 뒤 내 이름 세 글자가 들어간 자격증을 받을 수 있었고 그 한 장으로 나는 너무나 오랜만에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많은 시행착오 끝에 세상에 없던 특별한 캔들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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