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무등산서석대사계캔들
무에서 유를 만든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던 것을 존재하게 하는 행위다.
생각이 형태를 얻고, 의지가 움직임을 만들며, 시간 속에서 현실이 태어난다.
캔들 지도사 과정은 정규 커리큘럼을 익히면서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야 했다. 마지막에는 창작 작품을
제출해야 했고, 그게 이번 과정의 마무리였다.
사실 나는 이미 만들고 싶은 캔들에 대한 스케치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도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라고 힘을 북돋아 주셨다. 수업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외형과 재료에 대한
구상이 떠올랐다. 다만 생각대로 구현하기엔 넘어야 할 단계가 많았다.
완성작을 위해선 무엇보다 3D 모델링과 몰드 제작이 중요했다. 재료의 특성을 이해하고, 기법이 서로
어울릴지 시험도 해야 했다. 머릿속에서는 어느 정도 형태가 그려졌지만, 실제로는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만들어야 하는 과정이었다. 포트폴리오 제출 기한은 촉박했고, 그 안에 모든 걸 완성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결국 나는 계획했던 작품을 일단 미뤄두고 급한 대로 비교적 간단한 기법으로 제작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방향을 바꿨다.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차선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캔들 수업은 그렇게 잘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도사 자격증을 받았다.
집 베란다를 작업실로 쓰는 걸로 남편과도 얘기가 끝났다. 한쪽 벽에는 15칸짜리 책장을 세워
자격증이 잘 보이게 펼쳐두고 그동안 만들었던 캔들들도 진열해 두었다. 남은 칸엔 필요한 도구와 재료들을 정리해 두었다. 1500짜리 접이식 테이블 하나와 플라스틱 의자 하나, 이 모습이 작업실의 전부다.
내가 가진 환경 안에서는 최선을 다해 마련한 공간이기에 나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집안일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수업 시간에 배운 캔들을 복습하며 기법을 익혔다.
그렇게 연습을 이어가던 어느 날, 마치 운명처럼 한 소식을 접했다.
‘대한민국 관광기념품 공모전’
순간, 그동안 미뤄두었던 아이디어가 다시 떠올랐다.
그건 단순한 공모전이 아니라, 내가 만들고 싶었던 캔들의 본질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캔들의 의미 그 자체인 것이다. 심장이 다시 뛰는 것 같았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문화의 도시이자, 예향의 도시, 그리고 민주화의 도시로 불린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노잼도시’라는 이름이 따라붙는다.
관광으로 찾는 사람들도 많지 않고, 오더라도 잠시 머물다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곳을 대표할 만한 기념품조차 없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찾아보면 기념품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는 만큼 새로 생겨나는 감각이나 트렌드와는 결이 조금 달랐을 뿐이다. 여전히 예전 방식을 이어가는 상품들이 대부분이었고 더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상품이나 스토리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내 캔들은 그런 작은 투덜에서 시작되었다.
‘광주에도 지금의 감각으로 다시 해석한 기념품이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떠오른 게 무등산이었다. 광주의 상징이자, 늘 곁에 있었지만 너무 익숙해서 특별하게 바라보지
못했던 존재. 마침 그해, 무등산권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되는 쾌거가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라서 그런지 굉장한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나는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무등산의 아름다운 사계를 담은 캔들을 만들어 내야겠다고.
나는 곧바로 서석대의 실제 형태를 참고해 모델링을 시작했다.
3D 미니어처 모델링과 몰드 제작을 함께 도와줄 전문 업체를 찾았다. 몇 번의 수정 끝에, 서석대의 절리와
굴곡이 살아 있는 형태가 완성되었다. 화면 속 입체 모델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만 그리던 무등산이 현실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남은 건 오롯이 나의 손에 맡겨져야 한다. 그 형태를 내 방식으로 빚어내는 일.
서석대는 바위다.
그래서 그 위에 사계를 표현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단단한 표면 위에서 계절의 결을 살리려면, 색도 질감도 어느 하나 쉽게 정할 수 없었다. 봄의 빛,
여름의 녹음, 가을의 붉음, 겨울의 고요. 그 모든 것을 한 덩어리의 바위에 담아내는 일이 관건이었다.
수없이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긴 시간 끝에, 나는 최종 방법을 찾았다.
왁스 태블릿에 적용되는 기법을 일부 응용하긴 했지만, 그 외의 모든 과정과 표현 방식은 나의 아이디어로 완성했다. 인공의 재료로 자연의 결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오랜 실험 끝에 얻어낸 나만의 해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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