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리우, 닉 하나우어 |『민주주의의 정원』| 웅진 지식하우스
2008년 금융위기에 직면한 미국은 20세기 초 경제대공황의 악몽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그것은 경제를 위협할 정도였으며 미국은 미국대로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011년, 에릭 리우와 닉 하나우어의 『민주주의의 정원』 역시 그러한 대안의 일부로 탄생했다. (그들의 전작인 2007년 『진정한 애국자』의 2탄 격이기도 한데 현재 우리나라엔 번역 출간되지 않았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줄 몰랐다는 고백이 적절하도록 절묘한 타이밍을 앞두고 말이다.
『민주주의의 정원』은 “훌륭한 정원사는 절대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정원에 대해 책임을 진다.”며 땅에서 태어난 존재인 인간이 민주주의라는 정원의 훌륭한 정원사가 되는 방법을 제안한다. 민주주의의 3요소인 시민의식, 경제, 정부를 면밀히 들여다보기 전, 먼저 무엇이 나에게 유리할까라는 ‘사익’의 재정의부터 출발한다. 수백만 개인의 합리적 이기심이 마법처럼 공익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믿어왔던 지난날 기계형 지성의 오만함을 인정하면서 이제는 상호의존적이고 역동적으로 진화하는 공익이 사익이라는 정원형 지성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기억하자. “기계형 지성에서 정원형 지성으로”라는 슬로건을!
시민의식
시민의식은 그저 투표의 문제가 아니다. (중략) 어떤 장소를 방문했을 때 처음 상태보다 떠난 후가 아름답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또한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돕고 도움을 청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른 누군가의 책임으로 미루고 싶은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는 의미다.(83쪽)
사회는 우리가 행동하는 대로 만들어진다며 행동으로 다른 이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민주 시민인 우리가 갖추어야 할 소양임을 강조한다. 그것이 바로 ‘리더십의 변화’라는 그럴듯한 포장을 하고 있지만 사실 저 인용글은 우리나라 초등학교 사회시간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아마 미국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경제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쌍을 이뤄왔다. 자본주의는 자유주의 시장에서 성장해왔고 자본가들은 트리클다운(대기업의 낙수효과)을 자연스럽게 강요해왔다. 규제 없이 자유를 보장해주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정하게 경쟁하며 잘 굴러갈 줄 알았는데 이는 인간의 본성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해석했던 실패담으로 결론 났다.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유례없는 빈부격차를 겪고 나서야 말이다.
저자 본인들은 (마치 자본가들에게 난 너희 편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한 것처럼) 진정한 자본주의자라고 부르짖고 있지만 이 시점에서는 강력한 ‘공공의 손’이 필요하다고 피력하는 아이러니를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부
실질적으로 세상에는 적극적인 정부와 광범위한 규제, 그리고 높은 누진세율 없이 존재하는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민주사회는 없다. 서구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보여준 역사적이고도 독보적인 성공은 적극적인 정부 덕이라 할 수 있다. (183쪽)
이민을 결심했다면 작은 정부를 표방한 아프가니스탄으로 갈 것인가, 적극적인 정부로 대표적인 스웨덴으로 갈 것인가? 선택은 자명하다. 그런데 서구의 적극적인 정부의 성공은 오늘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부터 알고 있었다. 설마 미국만 몰랐으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저런 선택지를 들이밀고 어떻게 할 것이냐며, 우파의 작은 정부와 좌파의 큰 정부를 적절하게 섞은 ‘빅 왓, 스몰 하우’가 이상적이라는 당연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미국의 민주주의와 지본주의의 실패는 ‘규제가 없어도 양심 바르게 행동할 것’이라고 인간의 본성을 지나치게 낙관한 데서 기인했다. 다시 말하면 완벽하고 이성적인 기계형 지성의 실패다. 그것은 불완전하고 감정적인 정원형 지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역설을 반증한다.
인간은 다른 인간이 꼭 필요한 존재다. 인간이 신에 의해 창조했든, 유기화합물에 의해 진화됐든 간에 우리는 거대한 관계망 속에서 살고 있다. 욕구를 가진 존재들이 충돌하기 때문에 제도와 규칙이 필요하다. 그 가운데 우리가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며, 함께 나누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의 주장처럼 기본적으로 ‘행동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사회’, ‘다 같이 잘 살 때 비로소 우리는 모두 잘 살게 된다’와 같은 의식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앞선 글의 기조로 짐작할 수 있었겠지만 나에게 『민주주의의 정원』은 정보도, 감흥도, 깨달음도 낚을 수 없었던 책이다. 저자들의 이야기는 남편과 내가 늘 하는 대화의 일환이고, 아이들에게 생활 속에서 하는 교육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냉소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책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나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겠다 싶으니 이 책이 필요할 수 있겠구나! 많은 이들이 알고, 깨닫게 된다면 분명 우리 공동체는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