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운 |『리듬』| 정신세계사
방송 작가로 일 하면서 만난 친구가 있다. 일의 특성상 작가와 피디는 앙숙이기 마련인데 그녀와는 이상하게 마음이 잘 통했다. 나이도 동갑이고, 좋아하는 음악이 비슷했고, 무엇보다 함께 있으면 그저 편안했다. 그렇게 절친이 된지 11년. 함께 지낸 시간보다 멀리 떨어져 지낸 시간이 더 길어졌음에도 여전히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데는 친구의 배려와 노력이 더 크다는 점을 인정한다.
어느 날 그 친구가 택배를 보내왔다. 『리듬』이라는 책이었다. 베스트셀러도 아니고, 매체에 혹은 유명인이 소개한 책도 아니었다. 표지를 넘겨 <부정적 생각 싹 날려버리는 도구>라는 부제를 보고 나니 나는 절대 사지 않았을 책이라는 느낌이 왔다. 소위 자기계발서로 불리는 책은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수화기 너머에서 친구는 “요즘 내가 마음 공부하는 사람들과 함께 본 책이야. 읽어보고 네 마음도 들여다보면 좋겠다.”고 했다.
김상운. 작가의 약력을 보니 기자 출신에 충북MBC 사장을 역임했던 방송장이였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리듬』이 벌써 세 번째 책이라는데 또 한 번 놀랐다. 책을 읽는 동안은 하나도 놀라울 게 없었지만, 완독 후의 내가 달라진 것을 확인한 순간 정말로 놀랐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하겠지만, 그보다 서평의 서두가 이렇게 길다니... 이 책이 대체 어떤 내용일지 더 궁금할 것 같다. 요는 책의 부제와 같이 “부정적 생각 날려버리기”다. 작가는 먼저 ‘생각은 물건이다’라는 전제를 두고 ‘리듬을 맞춰’주면 상대의, 내 안의, 그리고 꿈을 방해하는 부정적 생각을 싹 날려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인슈타인은 ‘만물은 에너지’라며, 생각도 에너지라고 보았다고 한다. 정말 생각은 에너지고, 물건일까? 작가는 한 사례를 들어보인다.
직장 상사에게 호된 질책을 받은 남자는 집에 돌아와 TV를 보고 있는 아내에게 짜증을 낸다. 그에 화가 난 아내는 아이 방문을 열고 숙제는 언제 할 거냐고 잔소리를 퍼붓는다. 그에 격앙된 아이는 자신에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 강아지를 뻥 차버린다. 이처럼 부정적 생각이라는 ‘물건’은 짓눌러버린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풀어내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어딘가로 옮겨갈 뿐이다. (60~61쪽 정리)
부정적 생각의 연쇄반응을 누군가는 끊어야 한다. 어떻게?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어느 날 집에서 밤늦게 컴퓨터로 작업을 하던 남편이 아내 쪽을 쳐다보면서 신경질을 냈다.
“이 컴퓨터는 너무 느려!”
신문을 보던 아내가 반응이 없자 남편은 더욱 화가 나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놈의 컴퓨터는 너무 느려터졌어!”
아내는 여전히 반응이 없다. 남편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 망할 놈의 컴퓨터, 당장 박살 내고 싶네!”
아내도 화가 났다.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지금 당장 컴퓨터를 박살 내라는 거예요?”
남편은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난 컴퓨터에 화냈는데 당신은 왜 나한테 소리 지르는 거야? 젠장 이 집안엔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네!”
컴퓨터에 대한 불만이 부부싸움으로 비화됐다.
하지만 만일 아내가 이렇게 리듬을 맞춰준다면 어떨까?
“컴퓨터가 너무 느리니 짜증나죠?”
“응 정말 너무 느려”
“집에서 일해야 하는 것도 짜증나는데, 컴퓨터까지 느리니 더 짜증나겠어요.”
“응 정말 그래”
‘짜증나는 생각’에 장단(리듬)을 맞춰주면 남편은 이렇게 수그러들 것이다.
『리듬』은 이 외에도 주제에 맞는 다양한 사례들이 나열되어 있다. 어떤 사례는 눈물이 날 만큼 진심으로 공감이 되지만 어떤 사례는 정말 그럴까? 싶은 의구심도 든다. 어쩌면 사례가 문제가 아니라 작가의 집필이 문제일 거라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다. 그렇기에 읽는 동안 이 책이 작법에 있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 지난 일주일 꽤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묘하게도 그 일주일, 다른 때 같았으면 아이가 혼날 일들을 여러 번 저지르게 된 것이다. 친구에게 심한 욕을 했다는 것, (또 다른) 친구의 저금통을 함께 털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 너무 창피하고 속상하고 심지어는 자존심이 상했다. 또 연락도 없이 사라져 귀가하지 않는 통에 아이를 찾으러 다니는 일까지 있었다. 걱정과 불안과 공포로 두 시간을 보내며 눈물을 쏟았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에게 어떤 부정적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이의 당시 감정에 리듬을 맞춰주고, 내 감정을 내세우기보다 객관적 사실에만 집중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도 지키기 힘들어했던 귀가 시간 약속을 잘 지켰고, 해야 할 일을 이야기해주면 토 달지 않고 바로바로 알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전에도 나는 아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처음부터 혼을 내진 않았다. 그러나 분명 아이를 대하는 말투나 표정은 지난 일주일과 사뭇 달랐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겠다고는 했지만 권위적으로 대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는 반항적인 행동과 말을 자주 했다. 그런 반응에 나는 화를 내고, 아이는 마음의 문을 닫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그런데 아이가 알아챘다. 엄마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엄마의 걱정과 우려가 자신을 아끼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 (비록 일주일이라는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아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렇게 쉽게 둘 사이의 감정의 벽이 사라질 줄이야. 부모를 위한 강연이나 TV 사례에 나오는 상담가들의 이야기보다 책을 읽으면서 이미지 메이킹 된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계발서도 유행을 탄다. 10년 전에는 “00으로 10억 벌기” 등 재테크가 인기더니, 이후 “죽기 전에 해야 할 000, 101가지”와 같은 버킷리스트를 주입시켰고, “자존감 높이기”에 이어 최근에는 “공감”이라는 주제로 관계 회복과 마음의 평온을 꾀하는 책이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 돈도 꿈도 자존감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또 중요한 것이 바로 관계라는 것을 반증하는 결과라고 본다.
『리듬』 역시 큰 틀은 “공감”과 “평온”이다. 모든 독자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공감하고 평온을 찾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각자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는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 친구가 나에게 권해줬던 마음으로 다른 이들에게 『리듬』을 권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