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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책 선물

『눈의 여왕』 | 안데르센, P.J. 린치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by 사월달 april moon

결혼 전. 20대 후반에는 주로 홍대 부근에서 시간을 보냈다. 함께 음악 듣는 모임을 통해 지하 소공연장에서 인디밴드들의 공연을 보는 재미가 한창이었을 때다. 당시만 해도 밴드 공연 보러 다닌다 하면 굉장히 불량하게 보는 시선들이 있었지만, 실상 그 모임에서 인생 막 사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정말이지 단 한 명도!) 1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 고향도, 직업도 다양한 사람들이 음악 하나로 모여서 늘 파티 같은 날들을 보냈다. 그 파티는 젊은이들의 열정과 좌절, 창창한 앞날에 대한 기대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뇌로 가득했다.


처음 그 모임에 갔을 때, 그녀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다. 대단히 인상적인 외모와 패션 센스의 소유자였지만 딱히 대화를 할 기회도 없었고, 특별히 다가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의 모임에서 우리는 목례만 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어떤 계기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참 신기한데, 무척 가까운 사이가 됐다. 우리는 서로의 집을 오가기도 했다. (둘은 지방 출신이라 자취생이었다.) 그녀 덕분에 수입 맥주 맛도, 일본식 선술집을 즐기는 방법도, 프라이팬과 궁중팬 두 개로 다양한 국적의, 대단한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대화였다. 그녀의 이야기에 좌중은 실소, 폭소, 박장대소 등등이 이어졌다. 하지만 남을 깎아내리거나, 자신을 비하하거나 하는 식의 웃음은 전혀 아니었다. 유머는 물론 그녀의 말엔 뼈가 있었다. 많은 사람과 함께할 때도 좋았지만 둘이서 소소하게 나누는 대화는 더 좋았다. 텍스트로 주고받는 이야기조차 의미 있었다. 나는 누구보다 그녀에게만큼은 늘, 진지함과 유머를 균형감 있게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대화의 지휘자는 그녀였다.

그렇게 그녀는 지금까지 내게는 멘토다. 서로 가까이 살면서 왕래했던 것은 고작 만 3년. 나의 결혼 후 떨어져 살게 된 지난 10년 동안 딱 두 번을 만났지만. 그래도 그녀는 나에게 멘토다. 그저 서로 어딘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만으로도 그녀는 나에게 삶의 영감을 주는 존재다.


그녀에게 받은 선물 중 기억에 남는 것이 그림책 『눈의 여왕』이다.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은 그림책이었을 것이다. 돈을 스스로 벌 수 있게 되면서 서울 시내 대형서점을 그렇게 들락거렸지만 그림책 코너에 멈췄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림책은 주로 아이들이 보는 책이라는 인식이 지금보다 훠~~~~ 얼씬 강한 때였다. 물론 그녀가 채색을 담당하는 애니메이터였기 때문에 만화책이나 그림책에 훨씬 가까웠으니 그림책을 선물로 택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스물아홉의 나에게 그림책 선물은 적잖은 충격이었고, 특별히 신선함으로 각인되었다.


『눈의 ㅇ왕』 | 안데르센 (글), P.J.린치 (그림) | 어린이 작가정신 (2007)


『눈의 여왕』은 19세기 후반 이후 출생한 인류라면 모르기 어려운, 덴마크의 동화작가(이자 소설가) 안데르센 작품이다. 요즘에는 그림책 시장 저변이 엄청나게 확장되었지만, 지금 30~50대의 어린 시절만 해도 그림책이나 동화라면 안데르센이나 이솝우화, 그림 형제 등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중에서도 단연 인기는 안데르센이었는데 솔직히 내 경우, <미운 오리 새끼>나,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등은 흥미롭게 봤었지만 『눈의 여왕』은 딱히 감흥이 없었다. (아마도 제목인 눈의 여왕이 악역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 보면 정확히 악역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지만.) 그런데 이 그림책을 받고 찬찬히 읽어보면서 그녀의 마음이 플러스되어 특별해졌다. 그리고 나의 책장에서 유일한 그림책으로 몇 년 간 자리하고 있다가 아이가 태어나자 차차 다양한 그림책이 늘어갔지만 그 사이에도 『눈의 여왕』은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글밥이 많아서 아주 어린아이가 읽기에는 무리인 책이다.)


선물을 받은 지 6년 후 겨울, 4살 된 딸아이와 처음으로 '함께' 극장에 갔다. 《겨울왕국》을 보기 위해서였다. 『눈의 여왕』을 각색했다는 이야기는 얼핏 들었지만, 디즈니가 그간의 정체성에 대단히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소식이 더 혹했던지라 몰입에 몰입을 했었다. 모티브를 땄다고 해야 옳을 정도로 등장인물, 극의 구성 등에 차이가 있었다. 『눈의 여왕』의 주인공 카이와 게르다는 이웃이고 성별이 다르지만,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는 자매다. 또한 눈의 여왕은 카이를 탐하지만 엘사는 자신이 눈의 여왕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겨울왕국》엔 음모와 배신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유사한 점으로는 각각 거울과 얼음이었지만 파편이 가슴에 박혔다는 점, 카이와 안나가 위험에 처했을 때 게르다와 엘사의 눈물로 해결한다는 점, 순록이 등장하는 점(응?),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게 되는 점 등이 있다.


이제 큰 딸은 11살이 되어 이 책을 종종 꺼내어 본다. 7살인 작은 딸은 "인 투디 언노운~"을 부르며 언니 옆에서 『눈의 여왕』을 본다.



얼마 전, 그녀에게 문자메시지로 사진이 수신됐다. 그 사진은 강원도 어딘가의 이정표였는데, 그 속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활짝 미소를 머금고 몇 줄의 문장을 나누었다. 무려 1년 여 만의 연락이었다. 그래도 잊지 않고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잘 살고 있으려니 응원하는 우리들이다. 그녀가, 우리의 시간이, 서로를 향한 마음이 고맙다.


요즘 난 종종 지인들에게 의미를 담은 그림책을 선물한다. 세상에 얼마나 훌륭한 그림책들이 많은지... 알아버렸기 때문에 너무나도 즐거운 나눔이다. 하지만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좋은 그림책을 혼자만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사랑도 존중도 받아본 사람이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것처럼, 선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받았던 그림책 선물의 신선함이, 그림책을 선물하는 사람으로 날 이끌었다. 새삼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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