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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이 자매에게

『언니와 동생』| 샬롯 졸로토(글), 사카이 고마코(그림) | 북뱅크

by 사월달 april moon

장녀이자, 남동생을 둔 나는 어린 시절 여러 번 엄마께 떼를 쓴 적이 있다. 언니나 오빠를 낳아주라고! (옮긴이도 그런 추억이 있었다고 책 맨 뒤에서 밝혔는데, 그러고 보면 이 땅의 수많은 첫째들은 가질법한 이야기인가 보다.) 그건 주로 숙제하기가 어려울 때 였는데, 엄마는 우리 남매의 숙제를 일절 도와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니나 오빠가 있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정작 나는 동생의 숙제를 봐줄 만큼 친절하고 상냥한 누나였는가...하면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지만. 분명 첫째이기 때문에 양보할 것, 배려할 것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사실 초등, 중등 때는 오빠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스무 살이 넘고 보니 언니나 여동생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졌다. 자매. 그것은 내 힘으로도 어쩔 도리가 없는,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었다. 그저 그랬으면... 싶을 때 주변에 좋은 언니들, 좋은 동생들이 있어서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그런데 결혼하고, 첫 아이로 딸을 얻었다. 남편은 아주 기뻐했다. 남편은 외동이고, 시댁은 큰집인데 시부모님을 비롯해 시댁 식구들 누구도 나에게 아들이 아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기독교집안이라서라는 이유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3년 후 갖게 된 둘째도 딸이라는 사실에 남편은 더욱더 기뻐했다. 감정표현에 있어서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스타일이 아닌 남편의 성격으로 미루어, 그건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도 기뻤다. 비록 내가 자매는 될 수 없었지만, 자매의 엄마가 되다니! 아이들에게 너무나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물론 남자아이였다 해도 나와 남편은 같은 크기의 기쁨을 느끼고 엄청난 선물로 여겼을 것이다.)


『언니와 동생』| 샬롯 졸로토(글), 사카이 고마코(그림) | 북뱅크


『언니와 동생』이라는 책이 알라딘 메인 화면에 뜬 걸 보고 당장 장바구니에 넣은 다음, 전부터 사고 싶었던 책들과 함께 결제를 했다. 박스에 함께 들어있던 책들이 8권이었는데, 그중에 가장 먼저 들추어보았다. 아이들이 시골에 가서 며칠 있었던 때라 바로 보여줄 수 없음에 아쉬워하면서.


그런데 읽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툭, 하고 눈물이 터졌다. 동생을 찾다가 주저앉은 언니가 나오는 장면에서 말이다.


나는 동생을 아꼈지만, 동생이 속상해할 때 같이 운 적도 있지만, 책과 같은 상황들은 아니었다. 울이 자매 역시 책 속의 인물들과 완전히 꼭 같다고 할 수 없다. 큰 딸은 굉장히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아이다. 반면 작은 딸은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을 잘 살피는 편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림책 속의 자매와는 좀 반대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책의 상황에 급격히 몰입이 됐던 거 보면 남매였던 나에게도, 울이 자매를 보면서도 느낄 수 있는 어떤 고리들이 있었던 것 같다.


며칠 후,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책을 건네며 너희를 위한 선물이라고 했더니 둘 모두 반색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읽어주겠다고 앉아보라고 했더니 큰 딸이 동생에게 읽어주겠다며, 책을 가지고 둘이 방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아니, 평소에 그렇게 동생에게 책을 좀 읽어주라 해도 안 하던 녀석이... ㅎㅎ 참고로 큰 딸은 11살, 작은 딸은 7살인데 아직 한글을 떼지 못했다. )


종알 종알... 책 읽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방문 틈으로 엿보고 싶은 걸 꾹~ 참았는데, 아이들이 나왔다. 어땠느냐 소감을 물었더니 큰 딸이 "몰라" 한다. (큰 딸은 거의 대부분의 질문에 모른다고 대답한다.)


작은 딸이 야무지게 대답했다.

"언니 말을 잘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


그 말을 들은 큰 딸이 말했다.

"00 이에게 더 잘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


그 간단한(?) 대답들이 신통해서

"엄마는 그걸 읽다가 울어버렸어."

라며 나는 또 울먹였다.


그리고 딸들이 왜?라고 물어보았는데, 유야무야 화제를 돌리며 눈물을 쏙 집어넣었다.


나에게도 예쁜 선물이 된 『언니와 동생』. 부디 아이들에게 두고두고 읽어주는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울이 자매만의 '언니와 동생' 이야기를 만들어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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