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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라는 선물

꽃을 선물할게 / 글, 그림; 강경수 / 창비

by 사월달 april moon

2년 전, 그림책 모임에서 소개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화려한 책 표지에 마음을 빼앗겼다. 내용도 흡족해서 혼자서 읽어보고, 소리 내서 읽어보고,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고, 남편에게 권하기도 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때가 구분된다. 곰은 그때마다 같은 길을 지나간다. 거미줄에 걸려 살려달라는 무당벌레를 몇 번이나 뿌리치고. 그리하여 들여다보게 되는 곰과 무당벌레와 거미의 입장. 먹이사슬에 대해 인지한 독자라면 무당벌레의 애원과 곰의 거절, 그리고 거미의 본능 그 어느 편에도 설 수 없게 된다. 어쩌면 나는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그 세 인물의 위치한 삼각의 꼭짓점에서 각자 바라보는 시각과 입장이 다르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해의 주입이라고, 나 스스로를 오만하다 여겼는데 아이들은 별 다른 가이드 없이도 그걸 알아차렸다. 스스로 오만이라고 생각했던 것조차 오만이라는 걸 알고 부끄럽게 된 순간이었다.



처음 읽을 때는 그렇게 ‘먹이사슬’에 중심이 실렸는데, 거듭 읽다 보니 왜 <꽃>인가에 집중하게 됐다. 어째서 곰은 꽃에 설득당했을까. 단지 연애 중이라서?


인본주의적 시각으로 보면 의식주는 생존에 직결된 문제다. 그런데 우리 삶이라는 게 먹고, 입고, 자는(안전한) 것만이 차지하고 있느냐면 그렇지 않다. 꽃은 누군가에게는 쓸모없을 수도, 사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는 환희, 사랑, 감사 일 수 있다. (아마도 곰에게는 후자의 의미였을 것이다) 그런 경우 꽃은 추상적인 만족감을 해소하는 매개가 된다.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생태계’ 속에서 갖는 꽃의 역할이다. 그것은 앞서 이야기한 것과는 반대로 구체적이다. 꽃이 없다면 생태계 유지는 어렵다. 먹이사슬 최하단에서 수많은 동물을 먹여 살리는 것이 식물이니까. (씨앗 -> 꽃 -> 열매 등의 과정은 생략하겠다)

이것이 바로 꽃이 선물인 이유가 아닐까. 인간에게도, 지구에게도.



비슷한 맥락에서 꽃을 선물할게.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표지다. 곰의 큰 발 위에 날카로운 발톱, 그 위에 날갯짓하는 무당벌레, 그리고 화려한 색감의 꽃들. 얼핏 곰의 발이 꽃병처럼 보이기도 한다. 표지가 이 책의 가장 마지막 장면이라는 의견도 있다. 무당벌레가 꽃의 피워주겠다는 말에 혹해서 무당벌레를 살려주고, 여자 친구에게 꽃을 선물하는 것이라고. 사실 나는 내가 선물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편과 연애할 때 가장 처음으로 꽃을 받았던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 스타치스였는데 퇴근시간 회사 앞에서였다. 마치 표지의 검정처럼 어두운 밤이었기 때문에 환기된 추억이리라.


아, 남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남편은 이 책을 보고 한 가지 불만을 토로했다. 어째서 무당벌레는 존대를 하고 곰은 하대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과연 작가의 큰 뜻이 있었을까만은 생각해본다. 우리말의 존대와 하대에 대해서. (아마도 언젠가... 언급할 때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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