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원 | 『글자 풍경』 | 을유문화사
친정집 거실에는 서예가였던 외할아버지의 작품이 걸려있다. 그 자리에 있은 지 20년은 된 것 같다. 한 행에 다섯 자, 다섯 행으로 이루어진 한시인데 그 안에 연꽃을 뜻하는 내 이름 글자가 있다. 내 이름은 외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기 때문에 그 표구를 볼 때마다 특별함을 느낀다. 글씨를 쓸 때는 늘 붓펜을 사용하셨던 아버지께 편지를 몇 통 받은 적이 있다. 세로 쓰기에 한자가 섞인 정갈한 필체를 보며 글씨만으로 품격과 감동을 느꼈다. 아쉽게도 나는 두 분을 전혀 닮지 못했다. 하지만 두 분 덕분에 ‘글씨의 미’를 어릴 적부터 체감하며 자랐다. 그것이 실전으로 다가왔던 때는 건축을 전공했던 대학시절이다. 설계도는 도면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글자로 안내해야 하는 정보도 있다. 당시엔 도면을 손으로 그렸기 때문에 1학년은 선긋기, 레터링 등을 필수로 배웠다. 그때만 해도 필체라는 것에 개성이 있었는데 3학년이 되니 모두 캐드로 도면을 그렸고, 글자는 프로그램에 세팅된 폰트 안에서 선택했다. (당시에는 사용할 수 있는 폰트에 한계가 있었다.) 직장 생활은 노트북을 펼치며 일과를 시작하고 노트북을 덮으며 하루를 끝내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림보다 글자가 우선인 한글(워드) 프로그램을 사용했기에 폰트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작성할 때 내 눈이 피로하지 않은, 그러면서 예쁘게 보이는 폰트를 선택했고, 인쇄했을 때 어떤 폰트가 읽기 편할지도 고민해보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 경험들로 인해 『글자 풍경』이란 제목이 한 번에 눈에 들었고 심지어 반갑기까지 했다. 우리는 매일매일 수많은 문자를 접한다. 간판을 보고, 뉴스를 읽고, 문자메시지를 받는다. 그렇게 접하는 글자들을 디자인하는 사람이 바로 『글자 풍경』을 집필한 유지원 작가와 같은 사람이다. 그는 타이포그래퍼( 혹은 글자 그래픽 디자이너)다. 조선시대 봉은사 현판을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로 걸었다면, 봉은사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갈색 이정표는 타이포그래퍼의 아이디어를 거치는 것이다. 작가가 안내하는 글자의 풍경을 따라가 보면 역사 속에 새겨진 문자(글자)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유럽에서 알프스 산맥 이편과 저편의 글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나, 지중해 패권을 누가 잡았는지에 따라 변화하는 글자 등은 세계사에서 접할 수 없었던 디테일한 정보였다. 한글 글씨체 발달을 여인들이 주도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조선사대부들은 한글 창제 450년이 넘도록 한자를 사용했다. 한글의 명맥은 왕족과 소수의 백성에 의해 이어졌는데 실제로는 한글을 가장 많이 쓰는 이들은 궁녀였다. 왕족의 편지를 대필하거나 한글 소설 필사 등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궁서체로 알고 있는 궁체가 바로 궁녀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조선 후기 사대부들도 한글에 있어서는 궁녀의 글씨체를 표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흔히 글자는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글자 자체보다 글자가 가진 의미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도로 이정표에 적힌 글자의 경우, 디자인적 우수성보다는 글자가 가지는 방향성(정보전달)이 주목적이다. 이처럼 우리는 글자를 풍경 혹은 배경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디자인이지만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아이러니’(176쪽)를 품고 있는 ‘글자‘ 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글자 풍경』은 문자 정보의 숲에서 글자라는 나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책 띠지에 적힌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독창적 시선“이라는 출판사 홍보 문구보다 추천사 하단에 적힌 ‘박찬욱’이라는 이름에 더 끌렸다. 그런데 책을 덮으며 띠지 홍보 문구의 ‘독창적 시선’에 수긍한다. “유지원은 과학자의 머리와 디자이너의 손과 시인의 마음을 가진 인문주의자다”라는 박찬욱 감독의 추천사는 더 보탤 것이 없는 완벽한 소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