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 문학동네
나에게 시는 쓰는 것이지, 읽는 것이 아니었다
겨우 읽어낸 것이 기형도, 윤동주, 백석
그 중 백석은 멋 내느라 들춰보다 달떴다
윤동주, 기형도 모두 요절해 발간된 시집이 전부 유작인데
요절한 천재는 변절할 염려가 없으니 길이길이 남는다는데
백석은 사회주의에 의해 요절당한 것이나 진배없으니
후대 시인들이 추앙하는 시인으로 남은 것일까
소련은 인공위성에 사활을 걸었고
북조선은 수령님에 목숨을 걸다 보니
시인에게 감상적 허약함을 벗어나
창조자가 되라는 기괴한 주문은
마법사가 되라는 게 아니고 무엇인지
마법사가 되지 못한 시인은
삼수갑산 삼수 방목장에서 양(羊)을 받는 것이다
『일곱 해의 마지막』은
*오체르크에 반(反)하여 자신을 내몰았던 시인을
오체르크를 향하여 추모하는 소설가의 헌정
2016년 마흔일곱 쓰면 되는 소설가가
1958년 마흔일곱 쓸 수 없는 시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국민학교 2학년짜리가 쓴 시를 보냈다는 고백이
소설의 완성임을 전율한다
아마도 남은 인생의 반
시인이 읽었을 어린 시인들의 시를 짐작하며
나는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고, 소리 내 읽는다.
어머니가
국시를 하는데
햇빛이
동골동골한 기
어머니 치마에 앉았다
동생이 자꾸 붙잡는다
동시집 『아이들은 일한다』 중에서 2학년 박춘임 ‘햇빛’ 1958년작
*오체르크; 러시아어. 실제로 있었던 일을 적은 문학, 예술성보다 내용의 흥미를 앞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