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 | 서보 머그더 | 프시케의숲
나는 헝가리에 가본 적이 없다. 간혹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사진 정도로 도시 분위기를 상상해본 정도다. 그것도 자주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런 헝가리가 기억에 남을 일이 있었는데 때는 2019년 봄이다. 당시 나는 초등생 딸의 체육대회 때문에 학교 운동장에 있었다. 올케에게 전화가 왔다. 헝가리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타고 있던 유람선이 사고가 났다는데 혹시 어머니 현재 위치를 아느냐는 거였다. 친정 엄마가 유럽 여행 중이라는 것만 알았지 세세한 코스는 알지 못했다. 혹시나 그 배에 타고 계셨던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눈앞이 캄캄했던 15분이 지금도 생생하다. 다행히 15분 후에 엄마께 연락이 왔고, 노르웨이로 가는 크루즈를 타고 있다는 상황을 확인한 후 안도했다. 그것이 헝가리에 대한 나의 유일한 각인이다. 『도어』의 작가 서보 머그더는 헝가리 사람이고, 소설의 배경은 당연히 헝가리다. 어쩌면 이 책이 나에게 헝가리의 두 번째 각인이라 할 수 있다. 낯선 헝가리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머릿속에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때문에 장소도, 시기도, 특히나 등장인물의 (민족)성향이나 차림새도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초반 1/4 정도까지는 몰입이 어려웠다. 그러나 이내 소설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에메렌츠의 과거 이야기가 등장하면서부터다. 아버지가 둘이었지만 잃게 됐고, 자신이 잘 돌보았던 쌍둥이 동생이 벼락에 맞아 숨졌으며, 엄마는 우물에 스스로 빠지고 말았다는 어마 무시한 그 과거. 문제는 쌍둥이 동생과 엄마의 변고 현장에 9살의 에메렌츠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정신병원 신세를 지지 않은 것은 당시가 전쟁시대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트라우마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 사망자를 제외한 유럽 인구의 절반은 정신병원 신세를 져야 했을 테니까. 작가인 화자는 에메렌츠를 가사도우미로 고용한다. 그는 마을에서 유명한 일꾼이다. 그런데 보통 고용주의 패턴에 맞게 일해야 할 것 같지만 에메렌츠는 자신의 방식을 고수한다. 예를 들면 한밤중이나 새벽에 들이닥쳐 자신의 일을 해치우는 것이다. 일하는 방식만 완고한 것이 아니다. 그의 삶 자체가 요새에 둘러싸인 성 같다. 에메렌츠의 과거를 아는 사람도, 그의 집에 발을 들인 사람도 ‘나’가 유일하다. 그런데도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며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다. 이런 에메렌츠의 베일을 향한 서스펜스가 책장을 계속 넘길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화자인 나와 에메렌츠의 밀당, 화해, 우정 등이 주된 서사지만 사실 이 소설은 에메렌츠가 하드 캐리 하는, 철저히 에메렌츠를 위한 이야기다. 제목이 『도어』가 아니라 ‘에메렌츠’였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1987년 작품이니까 2987년 즈음에는) 『제인 에어』나 『테스』처럼 유명한 대명사가 되었을지도. 에메렌츠가 어떤 여성을 대명 할 수 있었겠나 묻는다면 나는 ‘타고난 이성, 분별, 연민을 가진 이 땅 위에 가장 인간적인 성자‘라고 대답할 것이다. 에메렌츠는 학교를 다닌 적은 없지만 계급의식에 젖지 않고 누구나 (심지어 동물에게도) 공평하게 대했고, 교회에 헌금을 하진 않았지만 그 어떤 이보다 이웃에 헌신했기 때문이다. 가련하게만, 강인하게만 그려진 ‘여성’이 아니라 ‘인간적인 성자’로 받아들였던 에메렌츠의 이야기는 조금이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읽어내기 어려웠던 소설이다. 어쩌면 한 인간을 들여다보고 그를 이해하기에 이 소설에 쏟은 집중력보다 훨씬 더 고도의 관심과 열정이 필요할 테지. 그런 마음으로 나와 관계있는 타인을 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읽어보고 싶은 소설 목록에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