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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달 april moon Feb 08. 2021

짜인 각본 속에서

『소송』 | 프란츠 카프카 | 문학동네

K는 하숙집에서 느닷없이 체포당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 둘이서 그에게 위압적으로 통보했다. 누군가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한데 좀 이상하다. 소송을 건 당사자가 누구인지, K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서른 살 생일에 벌어진 일이었다. 은행 간부였던 K는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지만 체포 이전의 일상은 이미 그를 떠나갔다. K는 법정 싸움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식적이지 않다. 법정은 허름한 주택가 어딘가에 숨어 있고, 숙부의 친구인 변호사는 K의 편인지 아닌지 통 모르겠다. K는 누구에게도 소송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한 적이 없었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그가 소송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도 의아한 대목이다. K의 소송은 마치 탑에 갇힌 공주를 구하기 위해 대마왕을 찾아 없애려는 게임처럼 계속해서 문이 나타날 것을 예고하고 있다. 문제는 마지막 문을 열고 대마왕을 해치운 다음 탑 위로 올라갔을 때 그곳에 공주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소송이 진행될수록 그가 알게 되는 것은 단 하나, 이 소송에서 이길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K는 점점 순응한다. 그리고 결국 (처음과는 다른) 검은 양복의 사내 둘에게 자신의 몸을 맡긴다. 우리는 살면서 그런 상황을 얼마나 마주하게 될까. 합리적이지 않음을 항변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비합리적인 체제에 순응하는 것이 생각보다 쉬울까, 아니면 죽어도 안 될 일일까. 어쩌면 K가 함정에 빠진 건 아닐까? 마지막까지 실마리를 찾아본다. 하지만 그 덫을 누가 놓은 것인지, 왜 놓은 것인지, 끝내 알지 못한 그의 최후를 보며 이 픽션이 내가 발을 디딘 현실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흠칫한다. 집단은 개인이 모여 만들지만 집단을 움직이는 것은 특권을 가진 일부 집단이나 개인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특권은 선망을 넘어 추종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경계를 넘어 타도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소송』은 특권을 가진 자(혹은 집단이)가 누군지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이 공포가 된다. 카프카의 『소송』은 미완의 소설이다. 그의 원고를 맡은 친구에게 모두 불태우라 했지만 친구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기어이 출판했다. 곳곳에 시제나 상황이 맞지 않아 각주가 달려있을 정도로 초고에 가까운 이 소설을 보는 동안 카프카의 천재성에 감탄하게 된다. ‘이게 초고란 말이지? 그럼에도 느껴지는 완성도는 뭘까!‘ 그의 재능에 감탄하다 보니 겨우 마흔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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