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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달 april moon Feb 16. 2021

어린 왕자 에피소드

『어린 왕자』 | 앙투르 드 생텍쥐페리 | 박성창 옮김 | 비룡소

중학교 때 읽었을까? 정확히 언제 처음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기장, 다이어리, 책갈피, 노트 등등 사용했던 다양한 문구들에 어린 왕자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번역서도 너무 많고, 원작을 오마주한 그림들, 이야기들이 수도 없는... 그야말로 ‘레전드 오브 레전드’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명작이다. 그러니 책의 내용이야 (심지어 읽지 않은 이들도) 다 알 정도니까, 최근 『어린 왕자』와 연결되는 에피소드를 정리해봤다. 에피소드 1 〔역효과〕 2019년 8월. 서점에서 급하게 이 책을 골라 샀다. 내 눈에 띈 게 문제였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아이는 방학 중에 나의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 약속 시간을 조금 앞두고 커피숍에서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면 좋겠다 싶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보통 자기 가방에 읽을 책을 넣어가지고 다니는데 그날따라 책을 챙기지 않았나 보다. 다행히(?) 근처에 서점이 있었기에 아이를 커피숍에 앉혀 놓고 책을 사 오겠다고 했다. 정말 더웠다. 3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는데 땀이 줄줄 날 정도로. 아동문학 코너를 휙 둘러보는데 『어린 왕자』가 눈에 들었다. 오래도록 안 보던 책이기도 했고, 딸도 좋아할 것이라는 확신에 얼른 책을 집어 들어 계산하고 커피숍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이는 책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아이가 책을 읽기 싫다고 한 적이 거의 처음이었던 데다 그 책이 무려 『어린 왕자』라는 현실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어쩌면 그 더위에 내가 그렇게 땀 흘리며 가서, 너를 위해 사온 책인데... 하는 마음이 내 표정으로 드러났을까? 아이는 싫은 이유도 “그냥”이라며 책을 거부했다. 그 일이 벌써 (글 쓰는 시점 기준) 1년 반 전이다. 아이는 『빨강머리 앤』, 『마틸다』, 『호빗』, 『해리포터』 등을 읽어가는 와중에도 『어린 왕자』를 외면했다. 확인 사살 겸 어제도 물어봤지만 “아직 안 읽었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위에서 언급한 책은 물론이고, 다른 그림책을 구입하거나 빌리는 경우, 아이가 직접 고르는 책도 있지만 내가 읽고 싶어서 고른 책들도 많다. 본인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더라도 새로 보이는 책이 있으면 무조건 읽는 아이가... 어째서 『어린 왕자』만은 거부하는 걸까. 지금 아이는 그때 기억을 잊었는지 어쨌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 짐작키로는 서점에 같이 가고 싶었던 자신을 떼어놓고 엄마 마음대로 고른 책에 대한 ‘반항‘이 각인된 것이 아닐까 한다. 뭐... 언젠가는 읽겠지. 혹여 평생 읽지 않는다 해도 어떠리. 세상엔 많은 책이 있으니까. (물론 엄마는 끝내 아쉽겠지만.) — 에피소드 2 〔설렘〕 2021년 1월. 그 유명한 여우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코로나 시국, ZOOM을 통해 시를 함께 읽던 모임에서 알게 된 이가 있다. 동글동글한 인상이 참 서글서글한 그는 화면 너머로도 명랑함을 뿜어냈다. 지난 9개월 그럭저럭 알고 지내면서 그가 일본에 살고 있고 그림책을 가깝게 지내고 있다는 것, 전시회와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 등등을 알게 됐다. 열두 권의 월별 시집을 읽는 (나는 4월부터 참했던) 1년 기획 모임은 막을 내렸다. 새로운 해 1월. 위와 같은 인연으로 그가 번역한 그림책 북 토크에 참여했다. 북 토크 직후, “반갑다” “고맙다”와 같은 이야기를 메신저로 주고받던 중. 둘이서 열두 권의 시집을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도모를 하게 됐다. 그럼 그럴까? 앞으로 어떻게 모임을 진행할지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시간. 화상 미팅을 앞두고 나는 무척 설렜다. 8시부터 9시를 기다렸다. 그 기다림에 어린 왕자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설렘이었다. 그런 설렘과 기대로 두근두근하는 시간을 채우는 데 역시 『어린 왕자』가 제격이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장미와 바오밥 나무, 가로등지기와 지리학자 등등 다양한 사람들도 다행히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느낀 것은 ‘어른들은 잘 모른다’는 식의 설명이 그렇게 자주 등장했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것. 아마도 그때는 어른이 아니라서 그랬던 게 아닐까... 생각하니 현실은 내가 어른이라는 자각이 조금 씁쓸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여전히 좋았고, 또다시 읽어보길 잘했다는 위안과 마주하며 이 책을 다시 붙잡도록 해 준 그와 앞으로 펼쳐갈 시간을 설렘으로 상상해보게 되었다. 부디 어른이 돼서 설렘으로 다시 만난 『어린 왕자』가 올 연말에는 고마움으로 다시 떠오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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