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 | 더글라스 케네디 글, 조안 스파르 그림
어둠을 쫓는 여신, 햇살을 뜻하는 오로르. 그 이름을 가진 아이의 목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없다. 오로르는 조지안느 선생님 덕분에 태블릿에 글씨를 써서 겨우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불편할까? 자신의 소통방법이, 또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이. 하지만 오로르는 말한다. “나는 남들과 다르대. 근데...... 당연한 거 아니야?” 맞다. 우리는 다 다르다. 그러나 자꾸 잊는다. 어떤 기준을 세우고 카테고리를 만들어 데이터화해서 사람을 분류하려고 한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책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오로르 외에도 비대한 몸 때문에 아픔을 겪는 루시, 교통사고로 험상궂은 얼굴을 가진 정원사가 등장한다. 그들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억울해진다. 편견에 휩싸인 약자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자주 접할 수 있다. 책이나 영화, 뉴스 보도를 통해. 그럴 때 당신은 어느 편에 서는가? 아니 정확히 당신의 양심과 정의는 누구의 편인가? 답을 내렸다면 현실에서 당신의 모습은 어떤 지도 한 번 생각해보자. 출근시간 당신이 탄 버스에 장애인이 탑승하느라 출발이 지체되었을 때, 아이의 영어 선생님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고도비만이 확실해 보이는 직원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음식 주문을 받을 때. 현실은 생각과는 다르고 마음과도 다를지 모른다. 더불어 살자고, 누구에게나 인권은 같다고, 세상은 평등해져야 한다고 한다. 벌써 수백 년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껴지는 건 이런 이야기를 담은 책과 영화는 아직도 쏟아지고 있고, 공분을 살만한 뉴스가 매일 같이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로르처럼 ‘우리는 다르다’는 사실을 쿨하게 인정하면 될 텐데. 그게 그렇게나 어렵다. 어쩌면 오로르에게는 마음을 읽는 특별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마음이 아픈 타인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법 같은 능력이 없는 우리들은 지속적으로 공감과 이해, 역지사지의 감수성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와 같은 책을 읽으면서 말이다. 우리는 다 같이 존중받아야 할 존재고, 우리는 다 다른 인격체라는 것을 늘 염두하면서 실천해야 한다. 그 실천은 의식적 행동이 아닌 무의식적이고 자동반사 같은 행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 장애인의 날, 어린이날, 여성의 날과 같은 약자들의 기념일을 새기지 않아도 되는 그때가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