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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달 april moon Mar 16. 2021

화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돌 씹어 먹는 아이』 | 송미경 글, 안경미 그림 | 문학동네

『돌 씹어 먹는 아이』는 일곱 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대체로 소외당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말을 못 하는 아이는  년에 삼일 열리는 시장에서 혀를 사 온다. 지구가 동그랗다고 말하는 아빠는 아마도 명예퇴직을   같다. 어느  고양이 부부가 데리러  아이는 진짜 부모를 뒤로 하고 짐을 싼다. 젊은 엄마에게 버려진 아이는 친구 엄마를 의지하지만 그녀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돌 씹어 먹는 아이」처럼 유별난 주인공도 있다. 극적 화해를 위해서는 극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제격이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이 화해하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가 동화여도 괜찮을까?

 번째 이야기, 「혀를 사 왔지」에서 시원이는 혀를 가지게  다음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들에게 독침 같은 말로 쏘아붙인다. 심지어 엄마에게도. ‘독설 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끝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시원해진 시원이가 혀를 샀던 시장을 찾아가서 이제 필요 없어진 혀를 되팔려하는 장면이 마지막이다. 어쩐지 찜찜하다. 시원이가 친구들과  지낼  있을까? 엄마에게  혼이 나진 않았을까? 이런 걱정이 드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밀려온다.  화해해야 할까? 철저하게 시원이 입장에서만 서보게 된다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가 하면 「돌 씹어 먹는 아이」는 남다르다. 아이는 안다. 그래서 남에게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 그런 모습을 지켜보자니  아이는 조만간  먹는  스스로 그만두고 사회화되겠지 라는 결론을 짐작해본다. 하지만 아이는 사회와 화해하지 않는다.  하긴,  먹는 것이 남에게 피해가 되는  아니니까 굳이 남들과 같아질 필요는 없기도 하다.

우리는 더불어 산다. 가족, 친구, 동료 등 타인과 함께 사느라 힘들다. 물론 그래서 덜 외롭지만 어떤 때는 남과 함께여서 더 외롭고, 더 괴로울 때가 있다. 게다가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참담하기까지 하다. 책이나 영화 같은 이야기 매체는 그런 갈등을 봉합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미덕을 용서나 용인, 포용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같은 맥락이다.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는 교훈이라는 탈을 쓰고 ‘좋은 게 좋은 거다’를 강요하기도 한다. 『돌 씹어 먹는 아이』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부당하고,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폭력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이 꼭 화해와 용서는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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