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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나무 May 25. 2023

기린 목을 가진 딸에게

내면의 정원, 퀼리아 가꾸기

"자신을 한 아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 아이를 나타낼만한 인형을 하나 골라보세요."


기린이 눈에 띄어 얼른 집었다.



"왜 그 인형을 골랐나요?"


"목을 길게 쭉 빼고 있는 모습이, 매사 열심히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제 모습과 닮아서요."


"아,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네요."

"지금부터는 그 아이가 되어 쏟아내고 싶은 말을 쏟아내어 보세요. 험담을 해도 좋고 욕을 해도 좋고 무슨 말이든 괜찮아요.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언어를 통해 밖으로 내보내어야 인식됩니다. 그리고 다시 어른이 되어 그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해주세요."


.

.

.


"해보니 어떠셨나요?"


"제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해본 적은 있지만, 저 스스로를 제삼자처럼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보따리 보따리 풀어놓는 것도 마음이 힘들었거든요. 아이인 제 말을 들어보니, 안쓰럽게 느껴졌어요. 토닥여주고 싶고,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 해 먹여주고 싶고, 머리도 곱게 묶어주며 쓰다듬어 주고 싶어요. 아무 긴장도 걱정도 하지 않고 그저 편안하게 푹 쉴 수 있도록 주변을 꾸며주고 싶기도 했어요."




내면의 정원, 퀼리아를 가꾸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른이 아이를 품고 받아주는 것도 그렇다.

그런데 스스로에게는 얼마나 노력을 기울여 왔나?

이제 나 자신을 내 딸이라고 생각해 보련다.




목을 길게 쭉 뻗어야만 했었구나.

그간 살아오며 긴장을 놓기 힘들었겠다.

긴 목으로 사는 게 힘든데, 목 짧은 동물이 될 수도 없고

얼마나 답답했을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많이 두려운가 보구나.

다가올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고,

그런 감정을 겪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도 마음에 안 드는데,

자신의 상태가 쉽게 바뀌지도 않을 것 같고 말이야.


나는 네가 기린 목이어도 괜찮아.

불안해하지 말라거나 긴장을 내려놓으라고도 하지 않을게.

그저, 내 앞에서 살아 주면 돼.

숨만 쉬고 있어도 돼.

누워만 있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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