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안방 침대 머리맡에 베개를 두 개 쌓아 놓고 기대어 눕지도, 앉지도 않은 상태로 쉬고 있다. 안방은 온통 흰색이다. 몇 년 전 집수리를 하면서 도배도 필름지도 눈이 부신 흰색으로 발랐다. 하지만 도배지보다 붙박이장과 화장실 문의 시트지가 훨씬 차갑고 밝게 하얗다. 전등은 시아버지가 손수 갈아주신 LED 평판등이다. 역시나 눈이 부시다. 침대와 침구, 커튼, 화장대는 또 은은한 베이지 색이라 전체적으로 여러 흰색과 미색이 다투고 있는 방이다.
그러나 거실에 소파를 없앤 뒤로 내가 이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이 자리이다. 이 자리였다. 편하게 기댈 곳은 여기뿐이니까. 내가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곳, 그러나 너무 편해서 동시에 나를 너무 묶어놓기도 하는 곳. 내 시야 왼쪽으로 들어오는 신혼 때 산 화장대는 치워도 치워도 수많은 물건이 쌓인다. 남편이 밖에서 들고 온 물건, 아이들의 자잘한 소지품들까지 우리 가족 모두의 잡동사니가 이렇게 저렇게 모여드는 장소가 여기다. 아직도 결혼 때 받은 기러기 한쌍이 자리 잡고 있는, 이제는 서랍이 고장 난 화장대도 이제 그만 놓아줄 때가 되었다.
점점 이불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베이지색 이불 너머 발치 끝, 침대 아래에는 남편이 연애할 때 선물해 준 커다란 흰 곰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발바닥에 생일 축하 메시지가 적혀 있는 이 곰은 거의 남편만큼 내 옆에 오래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제는 빵빵하지도 보드랍지도 않고 점점 납작해져서 이제는 제대로 혼자 앉지 못한다. 놀이터에서 이 곰을 건네받던 순간을 오랜만에 떠올려본다. 오래 함께 했네 곰아. 이제 곧 버려질, 고개가 기운 곰의 표정이 시무룩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