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국수 1부
순애의 요양원 입소를 결정하고 부산 시내의 여러 요양원을 방문했었다. 지역 주민 사이에서 평이 좋은 곳부터 배달을 하며 눈여겨본 곳까지 대략 10여 곳을 살펴보았고, 최종적으로 나래요양원에 입소 문의하기로 결정했다. 평소 배달을 오는 곳이라 직간접적으로 순애를 보살필 수 있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자연친화적인 환경이 마음에 들었다. 나래요양원의 작은 정원은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해가 저물고 바람이 부는 오후, 고요한 분위기가 정원과 뒤뜰에 감돌았다. 벤치에 앉으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중수는 처음으로 요양원 안뜰을 밟았다. 배달을 하며 익숙하게 드나들던 곳이었지만, 막상 직접 들어서니 묘한 이질감과 복잡한 감정이 가슴을 짓누르듯 차올랐다. 복지사의 안내를 받아 상담실로 들어섰다. 아담한 공간에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잠시만 앉아 계시면 시설장님이 오실 거예요."
복지사는 중수에게 앉으라고 권한 뒤, 그 앞에 비타민 음료 한 병을 두고 나갔다. 얼마 뒤, 노트 소리가 나고 시설장 은혜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김은혜라고 합니다."
차분한 목소리, 어깨까지 내려오는 생머리가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부드러운 미소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중수는 어정쩡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행복밥상 기사님이시죠? 매번 맛있게 잘 식사하고 있었어요. 감사드려요."
”아이고. 아닙니다. 잘 드셔 주셔서 저희가 감사하죠."
"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그러면 오늘은 보호자와 시설장으로 면담을 해볼까 하는데 괜찮으시죠?"
라며 은혜는 가져온 차트에 적힌 정보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입소하실 분이 어머니시죠? 연세가 어떻게 되실까요?”
질문을 받은 중수는 잠시 멍해졌다. 순애의 나이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51년생이시니까… 72세쯤 되셨네요."
"그러시군요. 아직 연세가 많은 편은 아니신데 실례지만 입소를 고민하게 되신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중수는 잠시 망설였다.
"네. 어머니가 5년 전에 하시던 장사를 접고 집에 계시기 시작했어요.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장사를 접은 이유는 아무래도 건강이 안 좋으셨기 때문이죠. 그런데 1년 전쯤부터 부쩍 깜박하시는 일이 잦아지더군요.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인지 능력이나 기억 능력이 떨어진다 싶었는데 어느 날, 정말 갑자기 기억을 잃고 집을 나가시더라고요. “
”어머나. 많이 놀라셨겠어요. “
”예.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정말 아찔했었죠. “
”이후 검사를 해보니 치매초기 증상인데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더라고요. “
”맞아요. 그런 증상을 배회라고 하죠. 혼란스러운 상황이나 스트레스, 시간에 대한 인식 저하 등등. 여러 이유로 그럴 수 있다고 하는데 어머니에게 전조 증상이 있으셨나요? “
”저도 어머니께 물어봤지만 잘 모르시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후로 한 번 더 집을 나가신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도 심각성을 느끼셨는지 요양원 입소를 원하셨어요. “
”본인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 쉽지 않으셨을 텐데 큰 결심을 하신 거네요. “
”그렇죠. “
은혜는 그 후로 몇 가지를 더 묻고는 이렇게 말했다.
”요양원은 제2의 집과 같아요. 많은 어르신들이 이곳에서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요. 그래서 되도록 집과 같은 안정감, 친구 같은 다정함, 가족 같은 포근함을 주려고 노력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이죠. 그래서 보호자님들께 솔직하게 말씀드려요. 어려운 선택을 하신 만큼 함께 부담을 짊어지려고 노력하겠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요. “
은혜는 솔직하게 요양원 생활에 대해 덧붙인 후, 중수와 눈을 마주치고 이렇게 물었다.
”그럼에도 저희가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허락해 주실래요? “
의외였다. 허락이라니. 보호자 입장에서는 치매 걸린 노인을 맡기는 격이었다. 게다가 노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찾아올 수많은 질환으로 인해 더 많은 도움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허락을 구한다니. 중수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행복밥상에서 일하며 다양한 요양원 종사자들을 만났다. 어쩔 수 없는 편견이 생겨났고, 실제로 불미스러운 사건을 전해 듣기도 했다. 보호자 입장에서 충분히 따져 보아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나래요양원은 달랐다.
시설이 아니라 자세가 달랐다. 이곳에 순애를 맡긴다면 조금은 안심이 될 것 같은 마음이었다.
”돌봄은 혼자만의 짐이 아니에요. 그래서 복지사가 있고, 요양원이 존재하는 거예요. “
라며 은혜가 확신 있는 미소를 지었다.
”네. 저도 모든 걸 다 의탁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머니를 함께 돌봐줄 이웃이 생기는 건 저로써는 감사한 일이지요. 집에 돌아가서 어머니와 좀 더 상의 후, 연락드릴게요. “
”네. 절대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머니의 건강이 우려되시겠지만 신체적 건강보다 더 신경 써야 하는 건 정신적, 심리적 건강이에요. 치매를 가진 어르신일수록 더욱더 세심하게 살펴봐드려야 하고요. 어머니와 충분히 상의해 주세요. 설령 저희 요양원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
”네. “
중수는 짧지만 여운이 남는 상담을 마치고 요양원을 나섰다. ‘돌봄은 혼자만의 짐이 아니에요.’라는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