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엄마와 국수

바람난 국수 1부

by SAY

며칠 후, 배달 쉬는 날. 중수는 오랜만에 엄마 손을 잡고 국제시장에 나섰다. 순애와 중수를 알아본 시장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순애 또한 연신 웃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아이고. 중수엄마.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나? “

젓갈을 팔던 나이 지긋한 아줌마 한 분이 순애를 알아보고 아는 체를 했다.

”안녕하셨어요. 잘 지냈습니다. 요즘 장사는 잘 되시고요? “

”날씨가 추우니 손님은 적어도 따끈한 어묵 끓여 먹겠다고 오는 손님들은 있으니 겸사겸사 우리도 더불어 살고 있지. 중수엄마는 어찌 지내니? “

”저는 잘 지내요. 오늘 중수랑 데이트하러 나왔어요. “

그 말에 옆에 서 있던 중수로 시선을 옮긴 젓갈가게 주인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중수. 네도 아저씨 다 되었네. 요즘 뭐 하고 사노? “

”그냥 이것저것 하며 삽니다. “

구태여 밝히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내뱉는 어떤 말이라도 금세 발이 달린 듯 잽싸게 시장을 훑고 다닐 터였다.

”저희 이만 가보겠습니다. 많이 파이소. “

중수가 불편해하는 걸 모르지 않는 순애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요즘은 인터넷 주문도 편리하고, 대형마트도 잘 되어 있어 굳이 시장까지 일부러 나올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순애의 바람대로 다녀 보고 싶었다. 그녀가 요양원 입소를 결심하고 필요한 이불과 생필품 몇 가지는 꼭 시장에서 사야 저렴하고 마음에 드는 걸 고른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그녀의 인생이 담긴 이곳을 두 눈에 담아보고 싶다 했다.


순애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미군 기지촌 인근, 판자촌 한편에서. 보고 듣는 것이라곤 가난뿐이었다. 그러나 일요일이면 파란 눈의 금발 아가씨가 가르쳐주는 성경 이야기와 영어 공부는 무척 재미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오면 선교사들을 따라 미국으로 가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었다. 그러나 인생은 자신의 바람처럼 흘러가지 않는 법이었다. 그녀가 식모로 일하던 부잣집은 3대 독자 집안이었다. 본처로부터 아들을 얻지 못해 안달이 났는데 마침 순애의 아버지에게 제안이 들어왔다. 첩으로 들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열심히 돈을 모으고 영어 공부를 하면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을까 꿈꾸었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이듬해 여름, 그녀의 배가 조금씩 불러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처의 배도 불러왔다. 비슷한 시기에 두 여자가 임신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집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게 되었다. 순애는 임신 6개월 차에 들어서고 있었다. 배꼽 주위를 누군가 통통 치는 듯한 느낌을 통해 자신 안에 아이가 자라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원하지 않는 인생이었지만 그를 첩으로 들인 사람은 다정했다.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으로부터 피했다는 것만으로도 안정된 둥지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임신 시기가 비슷한 본처의 미움은 생각보다 날카로웠고 남편마저 잃자 그녀의 모든 원망은 순애에게로 향했다.

어느 날 밤. 순애는 몇 푼 안 되는 종잣돈을 챙겨 철길을 따라 걸었다. 서울역에 다다라 이 땅에서 가장 먼 곳. 부산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무궁화호는 아주 느리게 달렸고 혹여나 자신을 뒤따라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으로 몸서리쳐야 했다.

그리고 연고지 하나 없는 부산에서 만삭의 몸으로 시장통을 다니며 일감을 구했다. 식당 한편에 담요를 깔고 자기도 하는 등. 수없는 고생을 하며 중수를 낳아 길렀다. 벌써 50년이 넘어갔다.

국제시장에서 보낸 그 세월이 얼마나 길고도 쓴 지. 아픔뿐이었을 그 세월을, 왜 굳이 되새기려 할까. 중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순애에겐, 말없이 품고 있던 지난 인생이 있었다.


중수의 손을 잡고 느린 걸음을 걷던 순애의 발길이 어느 한 곳에 머물렀다. 70년 전통 회국수라는 간판이 달린 집이었다. 주말 장사가 더 바쁜 곳이라 평일 중 하루를 휴무일로 지켰는데 하필 오늘이 그날이었다. 중수의 일정에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회국수집은 휴무일에 찾게 되었다.

굳게 닫힌 문 틈으로 어두컴컴한 실내를 살펴보았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빛바랜 메뉴판. 가격이 오를 때마다 종이를 오려 해당 숫자만 바꿔 붙였다. 처음엔 3으로 시작했을까. 지금은 앞자리가 8로 바뀌어 있었다.

”중수야. 저기 저 문 보이나? “

순애가 주방 안 쪽 어딘가를 가리켰다.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만 보이는 듯, 한참을 살펴보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기에 쪽문이 하나 있는데 그때도 창고로 쓰고 지금도 창고로 쓰고 있다더라. 내가 저 방에서 너를 낳았다. 네가 태어나던 날이 겨울이었지. 창고이다 보니 난방이 되나, 뭐가 되나. 그래도 주인 할아버지가 마음씨 좋아서 두꺼운 이불 몇 채 주어 바닥에 깔고 잤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배가 막 아픈 거라. 애를 낳아봤어야지. 저절로 아랫배에 막 힘이 들어가고, 다리 사이로 뭔가 줄줄 새는데 밤은 늦었고, 핸드폰이 있나, 뭐가 있나. 오밤 중에 주인 댁에 전화하기도 그렇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창고 선반 기둥 아무거나 붙잡고 힘이 들어가면 들어가는 대로. 힘이 빠지면 빠지는 대로 정신이 홀라당 뒤집어지대. 그런데 정말 순식간에 쑥 하는 느낌이 들더니 물컹하고 이불 위로 뭐가 툭하고 떨어지는 거라. 다행히 똥 누는 자세로 있어서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단번에 알겠더라. 아기구나. 얼마나 놀랐는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너를 감싸 안고 덜덜덜 떨면서 그렇게 밤을 보냈어."

순애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진통을 이야기할 때는 아픔과 당혹감이. 아이가 태어나 품에 안았다고 할 때는 당혹감과 환희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중수는 말없이 순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새벽 일찍 육수 끓이기 위해 나온 주인 할아버지가 보고 기겁을 하고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지. 그때서야 네 얼굴을 제대로 보았는데 어찌나 곱던지. 딸아이라고 생각했는데 간호사가 아들이라고 할 때. 그때서야 나는 펑펑 울었어. 네 아버지에게 너무 미안하더라. 그래도 그 집안에서 나를 아내로 여겨준 유일한 사람이었으니 말이야. 첫날밤 보내고, 아이가 생길 때까지 몇 번이나 밤을 보내며 그때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얼마나 미안하다고 하는지. 그렇게 다정한 사람을 빼닮은 아들이라고 생각하니 너무너무 눈물 나게 미안하고. 그래도 내 몫은 해냈구나 싶었지."

순애는 고개를 연신 끄덕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중수의 손을 꼭 쥐고 그를 바라보는 순애 얼굴은 겨울바람 탓일까. 귀만 빨간 줄 알았는데 눈도 코도 볼도 물들어 있었다.

"고맙다. 중수야."

중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순애는 중수의 출생에 대해, 자신의 과거에 대해 깊이 있게 언급한 적이 없었다. 주민등록 등본과 초본을 뗄 수 있게 되면서 순애의 고향이 서울이라는 것 정도만 알았다. 어떤 사연으로 부산까지 흘러들어와 50년 넘게 이곳에서 살아왔는지 지독하게도 침묵했던 그녀였다. 어쩌다 한 번, 술기운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잠시 이야기해 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조각에 불과했다.

중수는 말없이 순애를 품에 안았다. 자신의 턱 언저리까지밖에 오지 않는 작은 체구의 순애가 품 안에 쏙 들어왔다. 등은 굽어지고, 머리는 백발이 되었으며, 얼굴엔 검버섯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엄마. 출생의 비밀을 이렇게 느닷없이 전하면 어쩝니까. 저 이제 50살 넘은 중년인데 너무 묵혀둔 거 아닙니까.“

중수는 부러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그러게. 엄마가 너무 느닷없었네. 아이고. 춥다.“

”국수나 먹자 했더니만, 문 닫혀 있고… 어묵이나 묵으러 갑시다.“

”내 정신 좀 봐라. 국제시장 왔으면 어묵 먹어야지. 국수는 무슨. 어묵 먹으러 가자.“

중수는 순애의 손을 쥐고 다시 시장 안 쪽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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