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순애의 새벽

바람난 국수 2부.

by SAY

새벽 다섯 시. 창밖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순애의 눈은 벌써 떠 있었다. 요즘은 이른 새벽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오래된 습관이었다. 살며시 방문을 열고 로비로 나섰다. 요양원의 긴 복도는 깊은 적막에 잠겨 있었다. 천장에 달린 희미한 불빛이 복도 바닥을 길게 비추고 있었다.

순애는 익숙하게 창가로 다가가 창틀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유리 너머로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이 가만히 내려다보였다. 그녀는 유리에 귀를 기울인 채 숨을 죽였다. 저 멀리서 익숙한 트럭 엔진 소리가 아득히 들려오는 듯했다.

'우리 중수, 도착했나.'

순애는 창밖을 응시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요양원에 들어온 지도 어느새 2주가 지났다. 낯선 침대, 낯선 이웃들과 하루하루 적응해 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프로그램대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시간은 금세 흘러갔다. 그리고 점심과 저녁. 하루 두 번, 중수의 기척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기다려졌다.

누군가는 한 달, 누군가는 반년, 또 누군가는 영영 그리움만 품은 채 지내다 가는 곳이 요양원이다. 그래도 순애는 아직 아들의 숨결을 멀리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가까이서는 아니었다. 중수가 배달통을 내려놓는 1층 현관까지만 오갈 수 있었으니. 요양원은 시크릿키 없이는 층간 이동이 금지되어 있었다.

순애는 아쉬운 대로 창가에 몸을 기댄 채, 배달통을 내리고 정리하는 중수의 몸짓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순애의 어깨를 콕콕 찔렀다. 순애는 흠칫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낼 뻔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돌아보니, 복희가 인형을 꼭 안고 서 있었다.

"엄마야, 복희 씨였구먼."

"놀랐죠? 미안해요."

복희는 미안한 얼굴로 순애 옆에 다가섰다.

"오늘도 아들 왔어요?"

"예, 배달통 두고 이제 가겠지요."

"참, 부지런하고 성실한 아들인가 봐요."

"그렇죠, 뭐. 그런데 복희 씨는 왜 일찍 일어났어요?"

순애의 물음에 복희는 조용히 품에 안은 인형을 쓰다듬었다. 흔히 '똘똘이 인형'이라 부르는 인형이었다. 눕히면 눈이 감기고, 앉히면 눈을 뜨는, 노란 원피스를 입은 아이. 복희 품에서 마치 숨을 쉬는 듯 고요했다.

"우리 선하랑 바람 쐬러 나왔는데, 너무 춥네요. 선하야, 들어가자."

복희는 순애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인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곤 인형을 꼭 껴안은 채 조용히 301호, '대장방'으로 들어갔다. 순애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트럭의 멀어지는 불빛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아침 7시 30분. 복지사들이 차려 준 아침 식사가 방마다 배달되었다. 순애와 복희, 말순은 일반식. 그 옆 침대의 순자는 갈식에 죽이 곁들여졌다. 식판 위에는 북엇국, 두부조림, 멸치볶음, 조미김, 그리고 김치가 차려졌다. 순애가 북엇국을 떠서 입에 넣으려던 순간, 말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이고, 밥맛도 없는데 두부조림은 또 왜 이리 짜노."

말순이었다. 순애가 입소한 뒤로 늘 이어진 밥투정. 말순은 나래요양원의 터줏대감이었다. 입소자들 사이에선 '대장'으로 불렸다. 평소에도 까칠했지만, 일부러 남을 괴롭히지는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순애에게만은 유독 시비를 걸었다. 아마도 순애의 아들이 매일 식사 배달을 오는 기사라는 사실을 알고부터였다.

"오늘 밥은 또 왜 이리 꺼끌 거리니."

순애는 별 반응 없이 묵묵히 밥숟가락을 들었다. 말순은 그런 순애의 무심함이 더 못마땅했다.

"국은 또 맹탕이네, 맹탕. 바닷물 떠다 끓여도 이거보단 맛있겠다."

말순은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누군가 맞장구라도 쳐주기를 바랐지만, 방 안은 조용했다. 대장방의 다른 이들은 무심히 식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말순의 속은 더 뒤틀렸다. 사실 불만은 음식이 아니었다. 순애가 아무 말 없이 꾹 참고 있는 게 괜히 얄미웠다. 보통 사람들은 이쯤 되면 눈치라도 보거나, 울컥 반박이라도 하게 마련인데, 순애는 입 꾹 다문 채 숟가락질만 하고 있었다.

"아이고, 내가 이래 떠들어도 귀 막고 밥만 처묵네. 속 편하겠다, 속 편해."

말순의 목소리가 조금 더 높아졌다. 하지만 순애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순의 입 꼬리가 비틀렸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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