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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 Jan 21. 2023

지금 조직에서 작품을 만드는 게 먼저다

70점이면 Pass or Fail이 나뉘는 시험에 100점 맞으려 기를 쓸 필요가 없다. 이땐 70점, 71점 정도 공부해 패스하는 게 가장 영리할 수 있다.

순위가 나뉘는 시험이라면 물론 얘긴 다르다.

그저 Pass/Fail만 가르는 시험일 지라도 이것 역시 90점 이상 받을 만큼 공부하는 이를 폄하하는 건 아니다. 그것들이 모여 뭘 하든 90점 맞는 수준으로 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고 커리어를 쌓을 땐 좀 다른 얘기 같다. 직급이 오르고 책임이 커질 수록 “일이 많음 안 되고 한 번에 하나를 생각할 수 있게 몰입해야 하고 리더는 바쁘면 안 되고” 등의 말이 많다. 하지만 단순히 리더가 널널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실제 그렇지도 않다.


수많은 일의 앞뒤를 감안해 의사결정해야 하고 그 일들을 엮어 폭넓게 생각도 해야 한다. 그게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자잘한 일들의 가짓수에 비할 수 없다. 확실하게 파고 들어가는 깊이와 탄탄한 뿌리를 기반으로 한 확장이 필요하다.


때문에 어디에 힘을 더 주고 어디엔 힘을 빼야 하는지, 이걸 결정하기 위해 수많은 걸 감안하고 할 일을 뾰족히 해야 한다. 누구에게든 총량 차이는 있을 지 몰라도 개인당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그래서 뭐든 90점 이상 맞으려 힘을 주는 건 리더에게 그닥 바람직하진 않다.


요즘 네트워킹 드리븐이니 사이드잡이니 사이드프로젝트니 하는 얘기를 타임라인에서 많이 보는데 앞선 글의 연장선상에서 난 좀 부정적이다.


나도 어릴 적에 온갖 스터디와 교육, 세미나를 섭렵하고 다녔더랬다.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이 배웠고 자기계발에 열정적인 이들을 통해 동기와 자극도 얻었다. 학습량이 많았던 만큼 다른 동료들보다 성장도 빨리 했고. 회사에서 뭔가 막혔을 때 그렇게 만난 이들과의 인맥을 통해 팁을 얻거나 솔루션을 통으로 받기도 했다. 일을 쉽게 하는 거 같고 그 사람들이 내 실력인 양, 거기서 배운 게 정답인 양, 새로운 걸 계속 배우지 않으면 도태될 것만 같은 착각도 하고 불안해도 하면서. 그 네트워크 안에서 실력 대비 좋은 기회를 얻어내는 이들도 많이 봤고 나도 제안 꽤나 받았다. 이런 것들을 겪다 보면 점점 더 여기에 몰입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 매몰되어 버린다.


한창 도취되어 있던 무렵 선배의 말.

“평생 잘난 사람 따라다니며 필기만 할 거니? 고만고만한 사람들하고 모여서 우쭈쭈 하는 거에 만족할 거야? 일을 해, 니가 있는 조직에서 니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일을 해”라고.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그날을 나는 십 년 이 더 지난 지금도 생생히 담아두고 감사해하고 있다.


사원 대리 시절 온갖 모임에서 다 만나던 이들 중엔 차부장이 되고도 여전히 모임을 전전하는 걸 꽤 본다. 저 과정을 깡그리 무시하고 폄하하는 게 아니라 본질추구와 끊임없는 자기 관찰이 필요하단 얘기다.


잘하고 싶어서, 빨리 성장하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란 동기가 클 때 회사생활 외 다른 일도 가능하다. 그런데 한편으론 회사에서 그 욕구가 충족이 되는 데 외부에서 대단히 왕성히 활동하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회사 생활보다 외부 활동이 더 열렬했던 이들 중 그래서 회사에서 대단히 인정받거나 현재 나이, 연차, 경험 대비 인사이트가 높다 평가받는 이들도 거의 보지 못했다. 대리과장시절, 딱 그 시절의 열심과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지금도 예전 수준의 모임 여기저기에 다 낀다.

보통은 회사에서도 열심이고 어느 정도는 일 잘한다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확연히 성장과 인사이트의 수준이 달라져야 하는 시점이 오는데 조직과 사람들의 기대치가 달라지는 순간이다. 이때부터는 성숙감을 기대받는다.


네트워킹과 북스터디, 교육 등에 대한 열렬한 참여는 커리어 초반엔 가파르게 나를 성장시키는 거 같지만 저 지점 이후에도 완급조절을 못하면 좀 더 좋은 직책, 처우를 받고 옮기더라도 엄밀히는 수평이동을 반복하게 된다. 성장으로 착각하며 숙련공으로 수평이동을 하게 될 가능성 말이다.


그럼에도 끊기 어려운 건 내가 속한 조직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인정받기보단 외부에서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적당히 열정적인 모습과 얕은 학습 전파로 칭찬받는 게 훨씬 쉽기 때문. 회사에서 변화를 일으켜 실력을 쌓고 인정받거나 이직하기 보단 네트워킹에서 끼리끼리 추천하며 기회를 얻는 게 훨씬 쉽기 때문이기도.  


그러나 네트워킹과 모임에 매몰되면 듣기 좋은 말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팩폭 기회가 줄어든다. 애초에 관계가 앞서기에 더 그렇다. 비판하는 이들은 굳이 만나려 않거나 일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기에 제대로된 피드백을 듣기 어려워진다. 결과적으로 몸 담는 조직만 바뀔 뿐 자기복제만 거듭되기에 성장곡선이 완만해지고 정체된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해도 여전히 회사나 리더는 회사를 애정하고 헌신하는 이들의 가치를 높이 산다. 이전과 좀 달라졌다면 능력 없는 충성엔 더 이상 관대하진 않다는 정도? 회사에 몰입할 필요는 없지만 일, 그 일을 하는 회사에서의 일에서 최대치를 끌어내 만들어가는 것이 먼저다. 찐성장을 원한다면 주객전도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내가 당장 창업이나 독립할 게 아닌 이상은 직장인이란 전제 하에선 말이다. 이게 결코 회사의 노예나 직장인 마인드로 폄하될 게 아니고 높은 가치이자 최고의 주도성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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