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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 Jul 26. 2023

소모되고 잃어야 프로인가?

예전 일하던 장면 중 갑자기 생각나는 분들이 있다. 


#1. 

업무 중 아내분이 집에 불이 났다고 전화가 왔다. "불이 났으면 119에 전화를 해야지 나한테 전화한다고 해결이 돼? 그럼 됐네, 회의 중이니까 소방관분들한테 커피라도 대접하고 이따 봐요"


#2.

아이가 아파서 응급실에 갔다는 아내의 전화. "그래서? 왜? 그러니까 조심을 해야지, 내가 맨날 뭐랬어. 아 진짜 당신, 왜 그리 조심성이 없어. 나 지금 일하는 중이니까 끊어"


#3-1.

우리 와이프는 출산 전날까지 일했어.


#3-2.

나는 출산하고 한 달만에 나왔잖아. 


#3-3.

누구누구는 애 낳기 직전까지 야근하고, 대단해. 


#4.

회식만 하면 새벽 2~3시까지도 마시고 술 자꾸 권하고 폭탄주도 엄청 먹이던 리더. 결국 다음날 뻗어서 못 일어나고 깨보니 출근시간 후. 위경련으로 일어날 수 없던 직원이 전화해 연차 보고를 하니 "직장인은 죽어도 회사 와서 죽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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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어떻게 저러냐 싶지만 여전히 저런 조직이 차고 넘친다. 1, 2, 4번은 흔히 볼 수 있기도. 저 분들은 얼마나 놀랐을지, 괜찮은지를 먼저 물었어야 했다. 그럼 저 두 분 모두 임원, 팀장으로 회사에서 나쁜 사람이냐 하면 전혀. 일을 못하냐, 절대!


늘 일이 먼저고, 누구보다 일 많이, 잘하던 분들. 저분들이 자주 쓰는 말엔 일, 프로, 전문가, 태도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을 전문가라 했다.


한때 나는 전문가(대체 전문가가 뭐란 말인지)를 지향한 적이 있다. 전문성, 그놈의 전문성을 갈고 닦아야 한다며 집착하고 공부하고, 일하고, 다그치며 살았다. 새벽에 출근해 밤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주구장창. 회식을 과하게 해도, 어지간히 아파도 꾹 참으며. 위경련이 일어났지만 퇴근하고 쓰러지고, 수술해야 하는 지경의 몸상태였음에도 요즘 몸이 너무 힘들다며 일했다. 그러곤 그렇지 않은 듯한 이들을 한심해하고 정신력과 노력이 부족하다 뭐라 했으며 아둥바둥 일하며 '여자' 운운되는 게 싫어 더 치열하게 조직생활을 했다. 그리고 내가 일 잘하고 본보기라 생각했던 조직 내 선배나 동료들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고. 


일=나인 건 문제는 아니다. 일하는 나를 스스로 애정할 수도 있고, 거기에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런데 말이다. 일만 남고 정작 나는 소모되며 내 소중한 이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을까? 사회인, 직업인, 프로 등에 정작 잃지 말아야 하는 걸 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프로의식을 대단히 착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전문가의 모습을 오해하고 왜곡해 노력은 노력대로 하면서도 나와 주변을 갉아 먹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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