큼지막한 필통에 형광펜, 볼펜, 젤펜슬을 색색이 넣은 채 수업시간이면 나름의 규칙으로 열심히 선을 긋고 필기하던 동창이 있었다. 쉬는 시간에도 등하교 시간에도 단어를 외우고 온갖 문제집을 쌓아둔 채 풀던 그 친구는 엄청난 노력형이었다. 학원도 과외도 받았고 독서실에서도 가장 열심히 하던 친구.
하지만 성적은 늘 중간 혹은 중하위.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직접 보진 못했지만 들리는 얘기론 열심이었다 했다. 그럼에도 모 대학 지방캠퍼스에 겨우 진학했다. 대학 입학 후 만난 그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결과는 떨어졌다. 그러고 취업 준비를 위해 토익 학원을 또 열심히 다녔다. 그렇게 열심히 했음에도 토익은 간신히 800점을 받았고 대기업은 모두 낙방했다. 그렇게 중소기업에 취업해 역시나 열심히 일했다. 연봉이 높진 않았지만 차근차근 회사에서 승진했고 몇 년 전엔 노후를 위해 공인중개사 준비를 한다 했다. 공인중개사 역시 결국 붙진 못했다. 중소기업 20년 차 연봉 6천만 원의 경리 직원, 이혼 후 외벌이 가장, 스펙도 뒷배도 없는 그녀.
그러나..
그는 지금 건물 하나, 아파트 두 채를 가지고 있다. 여전히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토익 900점을 넘어 본 적 없지만 아직도 영어 공부를 한다. 집을 가보면 그리 깔끔할 수 없고 늘상 뭘 하고 있다. 부동산쯤 가지게 되니 사람들이 열심히 산다, 잘 산다 치켜세우지만 그녀를 오랜 기간 보아온 바로는 대부분의 기간을 조소당했다. 하지만 가끔 다운되긴 해도 묵묵히 열심히를 지속해 온 그녀다. 돈을 제법 번 지금도 중학교 시절의 그녀와 다르지 않은 성실함을 잃지 않는다.
**************************
나는 그건 모르는 거, 잘 모른다, 나 진짜 열심히 했는데 실패했고 등의 말을 잘한다. 하지만 마흔을 넘기고도 한참은 못했다. 아는 척 떠들지는 않아도 모르는 걸 얘기 않고 마치 아는데 말 않는 냥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잘 되지 않은 일은 노력하지 않은 척, 내가 더 안 해서 그렇단 말로 적당히 넘어갔고. 모르면 입 다물고 있다가 안 보이는 곳에서 죽어라 공부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아는 척할 정도가 되면 쓰윽 말을 꺼내곤 했다. 원래 알던 마냥. 내가 뭔가 지식적으로 성장했다면 8할은 이런 열등감을 덮기 위한 '척' 덕분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몰라?" 무시당하더라도 그냥 모른다 하고 가르쳐줘 했으면 훨씬 빨리 배웠을 거다. 애초에 모른다 전제하니 이것저것 알려달라 귀찮게 하며 더 많이, 더 빨리,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며 성장할 수 있었을 거다. 모르는 게 벼슬은 아니어도 죄는 아님을, 그로 인해 지나치게 위축되고 전전긍긍할 필요 없다는 걸 이제야 안다.
천재과에 반짝거리는 이들을 여전히 동경하지만 이 나이가 되니 성실한 사람, 노력하는 사람, 한결같이 이걸 꾸준히 하는 사람이 훨씬 더 멋지단 생각을 한다. 그들을 진심으로 리스펙 하고 그 삶의 장면을 부러워한다.
열심은 됐고 잘해야지란 말이 흔하다. 난 성과에만 관심 있다 말하는 게 쿨한냥, 일 잘하는 사람인 양 여겨지기도 하는 세상이다. 세상이 알아줄 성취를 못하면 평범한 사람의 성실은 쉽게 무시당한다. 백 번 양보해 결과만 놓고 별 볼일 없다 할 수는 있다 쳐도 과정에 들어간 성실과 성의가 묵살된다. 최악인 건 노력형의 평범한 이는 '감히' 입 밖으로 "최선을 다했다" 말하기조차 어러워진다는 점이다.
어제 간만에 만난 동창과 이런저런 이야기 중 "나는 영어를 정말 잘하고 싶어. 아무리 단어를 외워도 왜 안 되는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잘하고 싶어. 근데 있잖아, 나는 이런 내가 가끔 멋져."라며 활짝 웃는 친구에게 울컥했다. 이 울컥함은 아마도 노력과 꾸준함이란 가치를 이젠 진심으로 존경하고 감동할 줄 알게 되었기 때문 아닌가 한다.
"나 그거 정말 열심히 했는데", "다시 돌아가도 그땐 그게 나의 최선이었어"라 담담히 말할 수 있는 건 모두 이 친구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