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있을 때 가장 이상했던 것 중 하나.
임원의 퇴임이 결정되면 인수인계랄 거 없이 바로 업무를 중지하던 거였다. 계약이라든가 마무리 짓는 거 외엔 거의.
어릴 땐 그래도 할 건 해야지라 생각한 적도 있지만 이게 맞긴 하다. 책임지지 않을 사람이 새로이 의사결정을 할 수도 없고 의사결정 할 수 없는 사람이 일을 추진하는 게 맞지 않으니까.
어차피 신임 임원이 오면 새로 업무보고를 하고 계획을 세우는 일이 매번 반복되었다. 실무 입장에선 제발 저 사람 좀 잘라줘라 기도를 했어도 임원 교체는 매우 번거로운 일이다. 기껏 세운 업무계획을 다시 짜야하니.
대기업의 구조가 임원들을 길어야 3년 계약, 요즘은 1~2년에도 교체되는 실정이니 단기성과를 내는 데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우리 임원은 중장기 전략을 못 세운다 하기엔 임원들 입장도 있는 셈. 반면에 스타트업은 실무 자체를 직접 뛰는 임원이 많으니 인수인계가 필수..일까?
내 경험상, 그리고 많은 스타트업을 보며 그렇지만도 않음을 알게 된다. 물론 대기업처럼 그날로 셧다운 하긴 어려워도 대기업이 다음 임원이 결정되어 바로 새 일을 시작하는 반면 스타트업에서는 채용공백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바로 채용되어 오버랩된다 해도 인수인계가 쉽지도 않다. 잘 정리된 자료가 보통은 없고 대기업 실무진처럼 한 방에 파악하고 시키면 찰떡 같이 보고서를 올리는 사람도 없을 거라서.
그럼?
기본 기능과 핵심만 나눠 가지든 하고 아니면 그냥 안 해도 된다. 원래 그 일을 안 했던 것처럼. 멀리 보면 언젠가 그 안 하던 일 중 못 챙겨 사고가 터질 수는 있지만 그냥 또 없는 대로 굴러가는 게 스타트업이다. 무엇보다 생각보다 자료로서의 가치가 없는 히스토리가 예상외로 많아서이기도 하다. 마치 온갖 자료란 자료는 다 공유받아 쌓아 두지만 막상 다시 열어보지 않고, 또 다른 자료를 계속 모으며 다음 일을 해도 무방하듯.
그래서 요즘은 초반부터 이런 거 힘 뽝 주고 하셔야 한다는 말을 안 한다. 정확히는 회사에 따라 초반에 하셔라 할 때가 있고 지금 굳이 안 하셔도 된다 한다.
우리도 이제 ~ 해야 할 거 같아요 하는 고객사에 오히려 템포 조절해 그냥 돌려보낼 때도 많다.
10명일 때, 20명일 때, 30명일 때 뭘 해야 한다는 건 절대 정답이 아니다. 50명쯤 되어도 인사팀장 없이 굴러갈 수 있는 회사도 있다. (이건 대단히 좋은 인사팀장이 없을 가능성이 높아 굳이 없어도 잇몸으로 돌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안 해도 되는 걸 인정할 때 진짜 꼭 필요한 일을 할 수 있기도. 개발이나 기술에만 적정 기술, 개발이 있는 게 아니라 HR도 적정 HR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