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고객사는 졸업하고도 꾸준히 연락한다.
짧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10개월까지 일했는데 특정 주제가 아닌 전반 세팅이었던 곳은 6개월 이상 함께 했다. 그렇다 보니 스태핑도 채용도 같이 하고 덕분에 구성원도 거의 안다. 덕분에 편하게 들락거리는 곳도 몇 곳 있고. 두어 달에 한 번씩 가서 이슈 검토도 같이 하고 수시로 대표님이 이런저런 고민을 나눈다. 이런 초기 고객사는 작년 여름쯤 다 졸업했다. 그러니 거의 9개월에서 1년쯤 지난 셈.
재밌는 건 1~3개월에 한 번씩 갈 때 회사의 모습이 제각각이란 거다. 사업, 분위기, 사무실, 직원, 대표가 그대로인 곳도 있고 갈 때마다 성장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침체하는 곳도 있다.
초기 스타트업이라는 게 열심히 한다고 다 잘되긴 어려우니 부침이야 당연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볼 때마다 다음 단계로 나가 있는 회사의 공통점은 있었다.
1. 전략과 비전이 명확하다
2. 실행계획과 그 과정 관리가 집요하고 디테일하다.
3. 실력이 다소 미흡해도 최선을 다하는 직원들이 있고 그들도 성장한다.
4. 핵심 인력이 유지된다.
5. CEO의 리더십이 탄탄하다.
6. 원칙이 또렷하고 그걸 지키는 데에 집착한다.
7. 인력이 급증하지 않는다
똑똑하고 남다르단 느낌 주는 창업가가 있다. 그들은 1에 강한데 조직 운영과 사업 현황에서 차이가 나는 건 2에서 나뉘었다.
똑똑함이 경험의 벽을 못 넘길 때가 있다. 경험이 정답은 아니지만 경험 없음이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은 리소스 산정. 일정과 리소스 산정에 대부분 시행착오를 겪는다. 7이 공통점인 건 단순히 문화가 어쩌고 바레이저가 높아서만이 아니다. 2와 리소스 산정이 약할 때 채용부터 했다가 회사와 직원 쌍방이 이게 아니네 하기 쉬워서다.
2가 힘을 발하는 이유.
보통 1에 강해도 2의 디테일까지 뛰어난 경우는 흔치 않아서다.
시기를 잘 타서, 대표의 인맥이든 탁월한 인사이트로 투자금이 늘며 회사가 커질 때도 있는데 막상 사업만 잘되고 들여다 보면 조직 운영은 엉망인 걸 자주 본다.
유명해지고 보상 좋으니 스펙 좋은 사람은 다 모이는데 금방 퇴사하고 리더십 불만, 조직문화가 문제인 곳. 초기 스타트업의 퇴사율이 높은 건 별문제는 아니다. 1부터 6까지 완성형이 아닌 과정에 있기에 조직의 시행착오는 불가피하고 인력도 점진적으로 좋아지지, 극적으로 밀도가 높아질 순 없어서다. 다만 1~6이 완성형인 것보다 중요한 건 우상향이냔 거겠다.
CEO의 리더십과 조직 분위기가 나빠도 사업은 잘될 때도 많으니 인사 만능주의가 늘 통하는 건 아니지만. 1~6이 점진적으로 우상향을 그리는 회사는 자잘한 이슈나 불평이야 없겠냐만, 요즘 같은 혹한기에도 단단히 일에 몰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회사는 CEO의 능력보다 리더십이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인다.
모든 게 선순환을 그리는 게 이상적이겠으나 굳이 저 중 차이를 가르는 하나를 고르라 한다면 내가 보아온 바로는 2번. 대부분의 회사가 2에 약해서다. 이게 약하면 번복도 많고 갈등비용도 커진다. 앞으로 집요히 나아가야 하는데 잦은 변경으로 일관성과 지속성이 깨져 버린다. 이 과정에서 성과와 무관한 자원이 줄줄 새어 나간다.
종종 경영자의 낙관적 비전과 거창한 전략은 이상하리만치 찬사를 받고 디테일은 폄하되는 거 같을 때가 있다. 그런데 디테일이 떨어지는 경영은 어떤 식으로든 리소스 소모가 일어나고 조직은 끊임 없이 그 구멍을 메꿔야 한다. 성장이 누수를 압도할 만큼이 아니라면 사업 아닌 운영에 에너지를 빼앗겨 버린다. 반대로 디테일이 성과를 보장하진 않아도 최소한 에너지를 좀 더 사업에 쏟게 해줄 순 있다. 그래서 디테일은 늘상 부족한 스타트업의 리소스 최적화 경쟁력이라고 봐야 한다.
여기서 실행과 운영의 디테일이란 단순히 있어 보이는 계획서나 빡빡한 엑셀이 아니다. 이럼 오히려 비효율만 양산해 진전의 발목을 잡는다. 말 그대로 전략이 명확하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뭘 어떻게 언제까지 할 거냐를, 기웃대지 않고 쭉 몰입하게 만드느냐. 리스크나 변수를 예측지에 넣어 시행착오를 줄이도록 하느냐. 보통은 낙관적 비전주의자가 이걸 폄하하고 디테일 없는 계획을 수시로 변경한다. 심지어 귀찮아 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