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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에 오고 싶은 분들께

by SSOO

■ 스타트업에 관심이 생긴 탄탄한(또는 비교적 안정된) 기업 출신이라면


스타트업에 나올 때부터 기대는 로켓성장 하는 회사에 올라타 그 과정과 열매를 온전히 함께 하고 싶다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회사 선택의 공통점 중 하나는 ‘아직 작은’ 회사다. 20~30명 정도로. 초기회사 가고 싶다면서 무슨 20~30명이냐 할 수 있는데 15명 이하로는 인사가 그다지 할 일이 없다. 없어도 굴러갈 수 있고. 필요해도 경영지원 주니어 1명으로도 최소한의 일을 하며 가도 된다. 정확히는 나 정도 머리 굵어져 버린 사람이 가기엔 조직은 쓸데 없이 무거운 사람을 쓰는 거고, 내 입장에선 밥값을 하기 어렵다.


한때 여기저기에서 회자되던 10명일 땐, 20명일 땐, 30명일 땐~~~ 같은 말은 결코 정답이 아니다. 초기부터 HR이 준비하고 체계를 만들어가야 한다지만 이 역시 굳이 필요하지 않단 입장이다. 같은 10명도 업종이나 제품 및 판매 단계가 다른 데다 결정적으로 대표와 구성원의 수준이 천차만별. 그 때문에 초기지만 20~30명 정도는 되고 대표가 도저히 혼자 할 수 없을 때 리더급 인사를 뽑는 게 나을 때가 많다. 그래야 1인분의 밥값 하는 일도 할 수 있는 문제의 규모가 된다. 물론 이 역시도 회사 따라 다름.


이미 수백억 투자 받은 곳 말고 수백억 투자 받을 회사의 초반부에 일하고 싶다는 건 도박과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모 아니면 도라는 게임에 베팅하는 나란 인간은 철이 덜 든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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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비교적 안정적인 중견기업, 탄탄한 중소기업에 있는 분들의 스타트업에 관심 있다는 커피챗 신청을 종종 받는다. 주도적으로 하고 싶고, 새로운 시도를 말해 봐야 막히는 윗선이 답답하다고. 안정적이라지만 안주하면 안 될 거 깉고 더 나이들기 전에 도전하고 싶다 한다.


내 경우 이 분들에게 조언할 깜도 아니고, 다만 세 가지 질문을 한다.


1. 어느 정도 규모로 가고 싶은가?


2. 업종은 뭘로 고려하는가?


3. 돈 못 버는 회사 다녀 본 적 있는가?


1번에 나이가 있을 수록 100명~300명을 말한다. 그러면서 체계 잡고 처음부터 만들어 가고 싶다고 한다.


2번엔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이 상관 없다고 한다. A도 관심 있고 B도 관심 있지만 상관은 없다고. 이 질문을 쭉 따라가다 보면 사실 꼭 스타트업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한다.


3은 멋쩍게 웃으며 없다고 한다. 1, 2번에서 규모가 크고 어디든 상관없다 하거나 모호할 수록 3번 질문에서 생각이 많아진다. 말로는 알고 있다지만 심각하게 생각은 않은 상태다. 보여지는 모습에서 화려하고, 투자금 많이 받았다 하고, 연봉도 많이 준다 하고 같은 것에 더 기울기 때문. 추가로 도전적이고 새로운 걸 하고 싶다는 게 어떤 건지 물으면 전혀 새롭거나 도전적이진 않을 때가..


이때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말미엔 상대가 “너무 깊게 생각을 안 했던 거 같다”는 말로 마무리 된다. 나이가 어리면 몰라도, 한창 돈 들어갈 일이 태산일 가정 있는 나이, 마흔 전후반의 분들이 스타트업은 어떤가 하며 내게 물을 땐 좀 더 냉정히 말씀드린다. 괜히 넘어 왔다가각종 사유로 입퇴사를 반복하며 이력서가 순식간에 지저분해지는 걸 수없이 봐와서다.


분명하게 어떤 리더, 어떤 회사에서 특히 무슨 일을 하겠다며 들어온 나도 지금도 여전히 모험 중이다. 뭘 치밀하게 계획한다 해서 기대대로 되지도 않는 곳이고. 첫 스타트업에 갈 땐 기본연봉만도 20% 정도 쳤는데 극초기라 그것도 너무 많지 않을까 걱정하며 원천징수에 20% 넘게 깎은 금액이 찍혔었다고 희한한 거짓말을 했다. 여전히 베팅하지만 지금의 난 연봉과 권한의 마지노선은 확실히 긋는다. 원하는 걸 정확히 아는 것만큼 타협할 수 없는 것도 분명해야 그나마 선택과 집중에 힘이 생긴다.


마치 대기업은 고루하고 스타트업은 아닌 거 같을 지 몰라도 양쪽에서 진하게 일한 경험으론 일은 대기업 때 토 나올 만큼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다. 대단한 체계와 무관하게 ASAP 업무도 엄청 났고. 그러나 같은 대기업이라 해도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곳도 있고 중소라고 야근에 열정페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소위 꿀 직장도 널려 있다.


이 다양한 경우의 수 때문에 어쩌면 가장 진지하게 던져야 할 질문은 3번이다.


불안정성은 싫은데 스타트업에는 오고 싶고 고연봉과 저 정도 규모는 되었으면 좋겠다면 그냥 지금 회사보다 좋은 곳을 찾는 거지 이걸 도전적, 주도적이란 말로 가릴 필요가 없다. 이직 욕구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뭐가 근본적인지는 적어도 자신에겐 솔직해야 한다.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합리화 할 필요도 없고. 그러나 저런 말로 스스로 눈을 가리면 기회는 더 노골적인 사람에게 먼저 갈 거라서다.


무엇보다 저 정도 규모의 스타트업이라면 그 채용에서 경쟁할 사람도 만만치 않을 거고 회사에 선택권이 더 기운다는 것도 알아 두자. “나 정도 하는 사람”이란 생각으로 출사표를 던진다 해서, 기대하면서도 그래봤자 스타트업이라는 마음으론 결코 만만치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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