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혼내기는 언어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여 상대의 행동이나 인식을 변화시키고, 이를 통해 자신의 뜻대로 통제하려는 행위. 혼내기의 핵심은 타인을 통제하려는 의도와 상대의 부정적인 감정 경험을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2.
혼내는 사람의 입자에서는 고함을 지르는 것과 차분한 말투로 말하는 것이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의 입장에서 두 방식 모두 고통스럽고, 두려움을 유발하며, 불안을 일으키는 부정적인 경험입니다. 감정적으로 거친 말을 들었든, 미소를 띤 차분한 말투로 들었든 고통은 고통이며, 두려움은 두려움일 뿐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에는 '나를 위해 해준 말'이라는 설명서나 면책 표시가 붙지 않습니다.
#3.
왜 손해를 보더라도 벌을 주고 싶을까? 바로 잘못된 행동을 한 상대를 처벌하는 행위 자체가 강력한 보상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중략) 처벌은 직접적인 이익을 수반하지 않으며 오히려 시간, 에너지, 자원의 소모라는 손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처벌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로 인해 느끼는 만족감이나 쾌감이, 실질적인 손해보다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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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책 중 가장 뜨끔하고, 가장 곱씹었던 것.
롱블랙에도 다루어졌다.
이 책에서는 '혼내는 사람'에게 혼내기란 일종의 중독이며 의존증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나 스스로도, 내가 보아 온 수많은 리더들 중에도 혼내기를 필요 이상 합리화 하고 더더욱 가혹해지는 걸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상대나 상황이 납득은 될 때가 많다. 혼내는 이들은 이걸 문제해결로 접근하고. 그러나 엄연히 혼내는 이의 감정적 해소 방식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는 없다.
아무리 학습능력이 좋고 스마트하다 해도, 나날이 성장하고 있고 경험치가 많다 해도 시간이 지나야 자연스레 해결되는 것들이 있다. 충분한 시간이 흐르기 전의 지적과 피드백은 오히려 역효과만 낳는다는 걸 경험상,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터다. (그리고 혼내는 사람은 스스로 사는 게 무척 피곤할 때가 더 많기도. 이런 리더를 비난하기에 앞서 그 감정을 이해하는 게 먼저)
심리학적으로는 과도한 통제욕과 지배욕, 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미성숙으로 본다. 미성숙은 자기 조절능력의 미흡과 연결되는데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나 경험의 양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면적 변화와 자기 조절, 미래에 대한 인식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숙은 대부분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며,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작은 씨앗이 큰 나무로 자라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인간의 성숙도 시간의 누적과 경험, 반복되는 자기 성찰을 통해 이루어진다.
내가 피드백과 코칭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이젠 그걸 하는 입장에서 요즘 좀 달라진 부분이라면 일일이 상대의 이런 면을 지적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감정이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지적보다 질문을 통해 스스로가 인식하도록 시간을 꽤나 들인다. 바로바로 이야기하는 것도 자칫 코칭과 피드백으로 합리화하는 코치의 통제욕구나 계몽욕구라 보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다려주는 거, 직접 지적보다 질문을 통해 말한다는 당연하고 뻔한 말이 아니다. 이런 글은 자기반성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떠올리며 비난하기 쉽게 만들기도 한다. 자기 인식만큼이나 옆에서 위하는 사람도 자기 인식이 필요하고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 이전보다 이걸 좀 더 할 수 있게 된 것도 내게 시간이 좀 더 흘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