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많은 상사와 선배들과 일했는데, 상사 중엔 '혼내는' 사람이 많았다. 소위 '쥐 잡듯이' 잡아 대는 상사도 흔했고.
왜 이런 사람이 많았을까 생각해 보면 이들은 매우 주도적이고, 때론 호전적이며 경쟁적이고, 내가 쥐고 흔들어야 직성 풀리는 지배적 성향의 사람이 조직에서 리더 자리에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긴장감 높은 조직일수록 이런 유형이 많고, 그런 조직의 리더일수록 더더욱 강하게 혼냈다. 지난 20여 년 간 수없이 본 이 유형의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자기 입으로 말한다.
"나 싫어하는 사람 많은 거 나도 안다, 나하고 일하는 거 힘들어한다, 난 다른 때는 안 그런데 일할 땐 완전히 달라, 나는 화나면 무섭다, 이렇게 해야 알아듣는다, 나한테 혼나더니 정신 차렸다" 같은. 그러면서 이 모든 혼냄의 명분은 일이 되게 하려면 어쩔 수 없다, 관계와 성과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건 성과라 단호히 말한다. 이런 말도 많이 한다. "아니, 일 잘하라 하는 말인데 왜 삐지냐, 왜 혼낸다 하냐, 왜 꿍하고 있냐". 이들은 은연중 남들이 자기를 비난하는 걸, 자신이 혼내는 사람이란 걸 즐긴다. 심지어는 자신이 얼마나 무섭게 혼내는 사람인가를 자기 입으로 강조 한다.
못지않게 짜증도, 화도, 혼도 많이 내어 보았으니 그 심리가 뭔지, 그들의 특성이 뭔지 꽤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내로남불에서 나 역시 크게 벗어나긴 어려워 나는 다 이유가 있고, 의도를 가졌지만 남의 혼냄엔, 더구나 그 대상이 나라면 지적질이 앞선다.
'혼냄'이란 말을 애써 피하려고도 한다.
혼냄의 '혼'은 사람의 정신, 즉 기(氣)를 뜻하며, 이는 혼백(魂魄)에 해당한다. 혼은 사람의 생명력과 정신을 의미하는데, 옛사람은 혼이 몸에서 빠져나가면 그 사람은 곧 죽는다는 거. 따라서 '혼내다'는 본래 '혼을 빼낸다'는 뜻으로, 즉 상대방의 혼을 몸에서 빼내어 죽게 한다는 무서운 의미를 갖고 있다. 어원 자체가 사람을 죽인다는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의미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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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혼냄과 화냄은 거의 없는 편이다. 물론 상대는 다르게 느끼겠지만, 적어도 의도한 상황 외에 내 감정을 배설하는 건 거의 없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이 되게 하려고, 일부러, 내 역할 때문에라는 합리화는 여전하고 아마 앞으로도 완전히 개선은 못할 거 같다. (솔직히 빈도가 낮아질 뿐 강도는 더 세질 수도?)
지 성질 못 이겨서라도 조직 내 필요한 악역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 여전히 기울어 있다. 그럼 그 특성을 잘 이용하면 된다. 대신 나를 가끔씩 멈추게 하고 돌아보게 하는 방법은 마련해야 한다. 바로 옆에 '혼날 걸 감수하고', '굳이' 말해주는 누군가를 두는 거다. 가르치듯, 훈계하듯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 마음을 이해는 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 그러지 마라고 말해주는 사람.
전에 날 아끼고 늘 차분하고 우아하던 선배가 작심하고 한 마디 한 적 있다. 온갖 독설을 뱉어내고 언쟁하다 "잘하자고 하는 말인데 뭐" 하며 바로 웃고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날 보며. "넌 뒷끝없다 하는데, X나 이기적이야. 상대는 안 풀렸는데 혼자 쿨하게 굴어 상대가 감정을 내비치는 걸 쪼잔하게 만들어 2차 심리적 가해를 준다"고.
몇 번 주변 지인들로부터 주의받은 적 있다. 늘상 내게 날을 세우던 이가 아니라 대체로 날 지지하던 사람의 주의는 꽤나 철렁하다. 날 받아주고 있었다는 걸 잊고 지낼 만큼 너그럽던 그들이 무조건 내편, 내게 다 동의해서는 아니었단 걸 새삼 깨닫기 때문. 더구나 상사나 선배보다 후배가 말한다면 더더욱. ~에도 불구하고 '가혹하다' 피드백한 후배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거다.
이런 부류는 그래서 필히 '레드팀'을 옆에 둬야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매우 주도적이고, 때론 호전적이며 경쟁적이고, 내가 쥐고 흔들어야 직성 풀리는 지배적 성향의 사람」일수록, 이들이 상사일수록 그 레드팀을 용납하지 못하기도. 내가 혼남의 주 대상이라면 이들을 잠재우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잘하는 것뿐이더라.
※ 오늘 내 레드팀 중 한 명이 옛날 내가 어땠는가 하는 말을 들으며 '아, 그때 진짜 어렸네' 얼굴 붉어짐. 이미지에서 말하는 내용이 나를 사찰한 건가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