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기사: 소개팅서 농담하던 MBTI를… 왜 면접시험에서 물어봐?
2000년 대 초반 기업교육 현장에서는 MBTI, DISC, 애니어그램(Enneagram), 교류분석(TA, Transactional Analysis)이 대유행(?)을 했다.
주니어 시기, 그놈의 전문성(?!)을 추구한답시고 이런 류의 진단 자격들을 수집하듯 모아갔다.
MBTI도 그중 하나인데, 다른 진단보다 좀 더 유형이 다양하고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각 유형들의 특성이 나를 포함해 주변인들을 대입했을 때 맞아맞아 하는 포인트가 많았더랬다.
이런 진단류들을 현업에서 잘도 써먹었다. 진단 자체로도, 활용해서도.
그러나 MBTI 첫 과정을 들을 때 '?'가 생겼고, 과정이 진행되면서 더더 '?', 현업에서 써보며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진단을 거의 활용하지 않게 되었다. 툴 자체보단 그걸 듣는 수강생들의 모습과 현장에서 그 결과를 접하며 나오는 반응 때문에. 오히려 거부감이 크다가 더 맞을 지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쉽게 분류해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을 유형화 해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나는 이런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MBTI를 포함해 상기 진단툴들이 위험한 건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한다는 본질을 벗어나 사람에게 프레임을 씌우고 편견을 되려 조장하기 쉽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선호를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 같은.
애초에 학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느니 하는 신뢰도 자체의 문제와 맞물려 이런 문제의식이 나만의 것은 아닌지라 시간이 흐르고 그 신선도 저하와 함께 유형화 진단들도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근 몇 년 새, TV에서 MBTI 진단이 언급되며 제2의 전성기를 얻은 느낌이다. 특히나 젊은 분들, 특히나 스타트업 씬에서 더더욱.
전문가 진단도 아닌 16 personalities란 간이진단 사이트가 공유되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에서 본인 MBTI를 공유하고 타인의 유형을 묻는 게 유행처럼 번지며. HR Analytics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진단', '측정' 같은 워딩이 스페셜리티를 높이는 이미지도 한몫했다 생각한다. (물론 거기서 MBTI를 활용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모 유니콘급 스타트업에서는 서류지원 시 16 personalities에서 진단 후 그 결과를 캡처해 제출하라 하고(지금도 그런가는 미확인), 어떤 회사나 대표들은 처음 만나자마자 MBTI 유형이 뭐냐 묻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경험하곤 했다. 더 당황스러운 건 뭐다 했을 때 "아, ~ 시구나. ~는 그렇죠, ~하시겠네" 같은 말들을 쏟아내는 거. MBTI 최고 전문가 마냥 얘기하는 사람이나 가볍게 말하는 사람이나 "?" 스러운 건 매한가지.
대단한 전문성을 가졌다라기 보다는 십 수년 이런 진단들을 배우고 활용한 입장에서 적어도 그들보단 훨씬 많이 이해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가르치고 판단하는 걸 보면 그냥 듣는다. 보통은 저런 사람들은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한 경우가 많아 말해봐야 입씨름만 되고 얻는 건 없더란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내 입장에선 어릴 적 "혈액형이 뭐예요? 아~ A형이라 그러시는구나, O 형은 그렇지"와 다를 바 없어 보일 때가 많다. 십 대도 아니고 소개팅에 나갔는데 상대가 '혈액형이 뭐예요?" 묻는다면.. 깬다, 많이.
레이 달리오의 '원칙'이란 책에 보면 직원 분석에 MBTI를 활용한다. 그래서 우리도 멤버들을 면밀히 분석하는 데에 활용하면 어떠냔 요청을 받았는데 1년을 섣불리 활용하는 건 위험하다며 이리저리 피했다. 일부 직군에 한해 버크만 정도 해보았고, 결국 퇴사할 즈음 16 personalities로 전사 진단은 했지만 리포팅 없이 슬랙에 서로 자기 결과를 공유하는 정도로 넘어갔다. 브릿지워터는 MBTI 세계 최고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사용하고 있고 이 외에도 다른 분석 내용들이 최고의 시스템과 데이터로 보완되고 있다. 나는 MBTI를 다양한 분석 자료 중 하나로 참고할 만큼 다른 부분을 잘 메꿀 자신이 없었기에 주저했다. 꽤 오래 다른 데이터를 쌓아야 하는데 그 사이 형성될 지 모를 편견의 시간을 방치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의도가 아무리 선해도 진단 시행 자체가 아니라 이를 제대로 해석하고 편견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전문성을 가진 이가 없다면 '적당한' 앎과 해석으로 접근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 그냥 가볍게 봐도 되는데 뭘 그리 심각하냐 할 수 있지만.. 나는 가벼울 수가 없다. MBTI 선무당이 너무 많다.
수많은 문제가 있지만 내가 가장 경계하는 건 자신을 합리화하고 타인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키는 데에 있다. 그리고 현장에서 족히 수백 명을 진단하며 느낀 건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투영해 진단에 임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에이, 당신 그거 아니야" 같은 말이 자주 오가는 것도 그런 측면. 별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 이해란 본질보단 왜곡을 더 부추기기 쉽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자기 합리화, 자의식 과잉, "쟤는 OOOO라서 그래" 같은 타인 비판 등으로.
물론 진단 자체는 좋은 툴이라 생각한다.
대화의 물꼬를 트고 아이스브레이킹 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이것만으로도 자기 이해에 큰 도움을 받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모든 툴엔 '이해와 인식'이란 본질이 관통함에도 항상 문제는 그 활용 과정에서 툴을 다루는 사람, 툴을 활용하는 사람의 왜곡에서 생겨나기 마련이다.
권장하는 건 가볍게 접근해 '자기 인식과 이해'에 시간을 많이 써보는 것. 진단이 아무리 정교화된다 해도 생각의 힘을 넘을 수는 없다. 사람이 둘만 있어도 각자의 백그라운드와 경험에 따라 수많은 특성 조합들이 생겨난다.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솔직함과 충분한 대화다. 성격진단도 그 최소한의 배경 이해가 전제되었을 때 비로소 해석이 출발할 수 있는 것. 일면식 없고 둘러 듣거나 이미 내 프레임이 투영된 타인을 일단 분류하고 보려는 게 아니고 말이다.
* 이런 글에 꼭 달리는 건 "그래서 Big 5가 가장 믿을만하더라고요" 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