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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만안교

두 번째 글보따리 - 곰의 글

문화재유랑단은 '문화재 탐방이 재밌고 쉽다'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직접 탐방 프로그램도 만들고, 지금 여러분이 읽고 계신 것과 같은 글을 쓰기도 하는 단체예요~!


우리 단체에서는 '글보따리'라는 이름으로 문화재 관련 글을 발행하고 있는데요. 쓰는 이는 3명이고, 주제는 '우리가 쓰고 싶은 문화재 글'입니다. 그래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을 수도 있고, 주제도 그때 그때 변경될 수 있어요. 하지만 덕분에 다양하고 색다른 글을 만나보실 수 있답니다 :)





우리가 접하는 문화재는 어디 멀리 가야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당장 츄리닝에 슬리퍼를 신고서 집 앞 슈퍼로 향하는 길로 나가면 있을 수도 있는 것이 문화재입니다. 평소에는 그냥 있는 문화재지만 다시 한 번 재조명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봅니다.

만안교의 모습 (출처 - 경기건축포털)

제가 맨 처음으로 재조명 해 볼 문화재는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에 있는 '만안교'라는 다리입니다.

만안교는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다리입니다. 조선의 임금 정조가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역인 융건릉(현륭원)에 참배를 하기 위해 가던 길에 놓였던 다리가 시초로서 처음에는 나무 다리가 기원입니다.


정조는 정기적으로 자신의 아버지 묘역에 참배를 하러 길을 떠났고 그 때마다 서울에서부터 수원까지의 길들을 정비하는 일도 함께 하였습니다. 원래 서울에서 수원을 가기 위해서는 노량진을 거쳐 과천을 향한 다음, 남태령을 넘어 인덕원을 지나 수원으로 갔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태령의 길이 너무나도 험하여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길을 정비하기 시작했는데 그 길이 오늘날 시흥대로의 시초가 됩니다.

시흥대로의 모습 (출처 - 금천홍보관)

새로운 길은 금천을 지나, 안양 삼막천을 건너서 수원에 이르는 길이었고, 이 삼막천을 건너고자 임시로 나무다리를 축조하였는데 이 것이 만안교의 기원입니다. (여담으로 남태령을 거쳐 넘어가는 과천 쪽에 영조에게 사도세자의 처벌을 강력하게 주장하여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김상로[사도세자와 영조를 이간질 했던 당시 영의정]의 묘역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길을 정비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정조는 정기적으로 현륭원에 갈 때마다 임시로 나무 다리를 놓는 것이 불편하게 느꼈었고, 이를 해소함과 동시에 겸사겸사 백성들의 교통을 편하기 위한 명목으로 돌다리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만안교는 실용성이 독보이는 다리인데, 하단부터 곡선을 그어 전체적으로는 반원의 모양을 형성하였고, 그 위로 화강암 판석과 장대석으로 깔아서 홍수가 나도 잘 버틸 수 있게 튼튼하도록 지어졌습니다. 때문에 지역 사람들과 정조의 능행은 만안교 덕택을 많이 보았습니다.


현재도 지역 주민들이 만얀교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 모습을 보아 정조가 했던 서울-수원 간 교통 정비 사업은 성공적이라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만안교 아래로 산책하는 주민들 (출처-경기건축포털)

여러분도 언젠가 만안교를 건널 때에 단순한 다리에서 재미있는 사연이 있는 문화재로 만나보았으면 좋겠네요.




두 번째 글보따리는 여기까지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문화재유랑단이 궁금하다면? (문화재유랑단.org)

두 번째 글보따리 작성자: 곰 (2020.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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