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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궁궐에 대한 몇 가지 단상

세 번째 글보따리 - 나무의 글

문화재유랑단은 '문화재 탐방도 재밌고 쉽네!'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직접 탐방 프로그램도 만들고, 지금 여러분이 읽고 계신 것과 같은 글을 쓰기도 하는 단체예요~!


우리 단체에서는 '글보따리'라는 이름으로 문화재 관련 글을 발행하고 있는데요. 쓰는 이는 3명이고, 주제는 '우리가 쓰고 싶은 문화재 글'이랍니다. 그래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을 수도 있고, 주제도 그때 그때 변경될 수 있어요. 하지만 덕분에 다양하고 색다른 글을 만나보실 수 있답니다 :)





유랑단의 2019 경복궁 탐방

문화재를 주제로 원고를 제안받았을 때 두 가지 느낌이 들었다. 향후 글로 풀어갈 문화재에 대한 호기심과 글을 어떻게 전개할지에 대한 막막함이다. 내게 문화재는 다양한 매체에서 소개되어 세상에 잘 알려진 경복궁, 수원 화성, 불국사 등 유명한 문화재가 전부였다. 어린 시절 어른들만 졸졸 따라 구경하던 경험이 기억 속 문화재의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글에 문화재를 어떻게 녹여야 할지 솔직히 지금 쓰면서도 방향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친숙한 문화재가 조선의 궁궐이라서 그에 대한 몇 가지 단상을 적어본다.     


작년 문화재유랑단 프로그램에서 기억에 남는 답사 중 하나는 경복궁 답사이다. 이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경복궁은 책이나 인터넷에서 본 설명과 사진이 전부였다. 멋들어지게 찍힌 근정전과 경회루, 광화문을 헐고 들어온 조선총독부, 광화문 복원공사 등. 단편적인 이미지를 조립해서 커다란 그림으로 확장할 계기가 필요했는데, 지난 답사가 그 역할을 해주었다.


광화문에서 근정전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커다란 대문(광화문)을 지나 한 개의 문(흥례문)으로 들어가 다리(영제교)를 건너 또 다른 문(근정문)에 다다르면 박석(薄石)이 깔린 넓은 앞마당 너머 경복궁 근정전이 보인다. 화려함과 단아함이 공존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은 건물을 눈으로 직접 본 그 당시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문화재를 직접 본다는 건 사고의 확장이라 말할 수 있다.


집옥재 내부에서


경복궁은 조선 태조대에 설립되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현존하는 문화재라 흔히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임진왜란(1592~1598) 당시 한양도성 내 모든 궁궐(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소실되었고, 조선 중기에는 풍수설로 인해 법궁인 경복궁의 중건(절이나 궁궐 등을 보수하거나 고쳐 짓는 )이 계속 미뤄졌다. 조선 왕실은 창덕궁, 창경궁을 먼저 복구하고 경덕궁(훗날 경희궁으로 개칭)을 새로 지어 사용했다. 고종대가 되어야 왕실의 권위를 회복시킨다는 흥선대원군의 명분으로 경복궁 중건이 시행되었다. 당시 한양도성에서 큰 규모를 차지한 경복궁이 조선 중후기 약 270년 동안 폐허로 남아있었다는 건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다. 어렵게 중건된 경복궁은 이후 일제의 만행으로 전각 다수가 해체되고 소실되어 원형의 10분의 1도 채 남지 않게 되는 비극을 맞이한다. 다행스럽게도 1990년부터 1, 2차 정비사업을 거쳐 고종대 건물 500여 동, 전체의 25% 수준에 달하는 복구를 진행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근정전 앞마당에 서서 과거 조선 조정의 일상을 상상해볼 수 있게 되었다.     


과거 경복궁 보수 공사 장면 (출처-시사문경)


경복궁이 법궁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조선 중후기에 그 역할을 대신한 건 태종대에 지어진 창덕궁과 성종대에 증축된 창경궁, 광해군대에 창건된 경덕궁(경희궁)이다. 정도전과 세자 방석 등이 정안군(훗날 조선 태종)에게 제거된 ‘제1차 왕자의 난’ 직후 조선 왕실은 한양을 떠나 개성으로 천도했다. 이후 즉위한 태종은 한양으로 돌아와서도 정도전이 깊이 관여한 경복궁을 사용하지 않았고 대신 새로운 궁궐을 지어 거주했는데, 그곳이 바로 창덕궁이다. 창덕궁은 임진왜란 당시 훼손되었다가 선조대 말엽에 가장 먼저 복구를 시작해 중건되었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보다 더 오랜 시기를 조선 왕실과 함께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정도전과 태종의 은근한 신경전이 사후에도 계속되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쉽게도 아직 창덕궁을 직접 보진 못한 터라 이번 겨울 답사를 통해 마음속에 흐릿하게 밑그림을 그린 창덕궁을 조금 더 선명하게 새겨보려 한다.     


탐방 모습

 작년 답사 기억과 책에 있는 자료로 겨우 첫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번 겨울 동안 조선의 궁궐을 답사하며 차근차근히 남은 글들을 풀어보려 한다. 조선 왕실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창덕궁부터 시작해 창경궁, 경희궁을 거쳐 경복궁을 가볼 예정이다. 필자는 문화재 전문가가 아니기에 답사에 대한 감상이 주를 이루고, 중간중간 관련 지식이 어설프게나마 부족한 내용을 보충할 것이다.


유랑단장이 말하길 조선의 문화재는 겨울(특히 눈이 하얗게 내린 날)에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주변 자연과 어우러져 단아하면서도 화려하고 웅장한 분위기를 풍기는 조선의 궁궐을 직접 볼 생각에 이제 막 시작된 겨울이 반갑다.          


** 이 글에 언급된 조선의 궁궐에 대한 정보는 도서 『서울에서 세계문화유산의 가치를 만나다』(서울역사편찬원 지음/서울역사편찬원/2017.02)의 내용을 참고했습니다.



문화재유랑단이 궁금하다면? (문화재유랑단.org)

세 번째 글보따리 작성자: 나무(2020.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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