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sns에서 무화과 디저트를 예찬하는 글을 올린 것을 읽었다.
무화과는 특별하고 농밀하며 가장 인상적인 과일로 망원동 어느 카페의 무화과 타르트는 그런 무화과의 본연의 맛을 최대한 이끌어내어 디저트로 아름답게 펼쳐냈으니 한 번쯤 경험해 볼 만한 맛이라고...
글에 혹해 당장이라도 그 디저트 가게를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그러다 내가 맛본 무화과의 식감과 미감이 천천히 소환되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오래된 2층 양옥주택에서 잠시 살았을 때 그 집 마당의 하늘을 무수한 잎으로 가려버리던 커다란 무화과나무가 생각이 났다.
지금에서야 무화과라는 과일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때는 그게 마트나 시장에서 볼 수 있는 과일도 아니어서 정말 먹을 수 있는 과일 인지도 몰랐고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주변의 다른 집들처럼 감나무를 심어 놨다면 따먹기라도 했지 라는 생각도 늘 했던 것 같다.
늦여름과 가을 사이가 되면 그 큰 무화과 열매가 익을 대로 익어 속절없이 바닥에 툭툭 떨어지곤 했는데 우리 가족 중 아무도 그걸 아까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부모님은 바빴고 동생들은 어렸다.
나는 늘 떨어진 과일의 과육에 꼬이는 파리들 때문에 그 나무의 존재를 귀찮아했다.
언젠가 열매는 열매니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실험 삼아 열매의 속살을 입에 넣어 본 적도 있었다. 그리곤 덜큰하고 뭉클한 맛과 식감에 놀래 결국 먹을 수 없는 과일이었다로 혼자 결정지었던 것 같다.
계절이 무르익고... 바닥에 처치곤란인 열매들이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나면 엄마는 그때서야 말없이 청소를 하셨다.
꽃이며 나물이며 모르는 게 없는 엄마가 한 번은 큰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그 열매에 대해서 세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줄 법도 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 당시 엄마는 그런 감흥을 느낄 여유가 없었겠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 시절 우리 가족은 힘들었고 함께 정원의 나무를 쳐다볼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는 일은 주말 딱 한번뿐이었는데 그때도 시시콜콜한 일상 보고 말고는 서로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부모님들은 부모님들대로.. 어린 동생들은 동생들대로 나는 나대로... 갑자기 바뀐 환경 때문에 각자의 생활에 몰두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사란들은 그 시절이 그렇게 암울했던 게 IMF 때문이라고 했다.
언젠가 어른이 되어서 그 때 그 집에 무화과 나무가 있지 않았냐고 물었는데 엄마는 그게 무화과나무였는지 기억을 못 하셨다. 그 당시엔 사는 게 힘들어서 나무 쳐다볼 여유도 없었을 거라고 말하셨다.
나도 가끔 힘들었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건 아마도 버티는데 온 정신을 쏟기 때문일 거다.
달콤하고 농익은 무화과 타르트에 대한 예찬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가 유년기의 초라했던 기억들과 함께 혀에 닿았던 그날의 맛이 생생히 떠올라 마음이 가라앉았다. 버터와 밀가루를 앞세워 아무리 달콤한 자태를 뽐낸다 한들 무화과는 언제까지나 나에겐 쓸쓸한 맛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