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가해. 그렇게 반복되는 상처와 고통.
구출되고 나서 경찰서로 엄마와 경찰차를 타고 이동했다. 경찰서에 도착해서 경찰 아저씨들이 제일 먼저 내게 종이와 연필을 내밀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상세하게 적으라 그랬다. 난 이제 막 그 집에서 구출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집에 있었던 3일 동안의 이야기를 손으로 써야 했다. 진정이 되지 않아 꺼이꺼이 울다가 뒤로 넘어갈 뻔하면서까지 겨우 써냈는데, 진술서를 써내고 나니 이젠 말로 진술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내가 쓴 진술서를 보고 경찰아저씨가 읽으면서 하나하나 질문을 했다.
"아저씨가 어떻게 했어?"
"자기 성기를 빨으라 그랬어?"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그 아저씨가 어떻게 했어?"
"얼마나 맞았어? 얼마나 세게 때렸어?"
"어떻게, 이렇게! 이렇게! 때렸어?"
경찰 아저씨가 내 진술서를 토대로 피의자를 흉내 내고 있었다. 거의 두 시간 넘게 진술서를 쓰고, 또 말로, 행동으로 그 장면들을 흉내 내보라 하는 등 내 상태와는 다르게 내 진술에 열정적인 경찰 아저씨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그게 끝일 줄 알았다. 내가 진술서도 쓰고, 말로 진술도 하고 하라는 거 다 했는데, 저 경찰 아저씨한테 다시 얘기하란다. 저 아저씨가 자세히 조사해 줄 거라면서. 그래서 난 또 진술을 반복하며 북받치는 감정에 기절할 듯 우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하고 있어서일까. 내 사건이 있고 나서 지역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온다고 했다. 내가 갇혀 있던 집을 촬영해 갔고 뉴스에는 그 집 영상과 함께 나의 피해 사실이 짤막하게 보도되었다. 뉴스에 나온 그 집만 보아도 심장이 벌렁벌렁 뛰는데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보고 있었다. 나는 며칠이 지났는 데도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지나가는 아저씨들 남자들만 봐도 무서워서 울 것 같은데 엄마는 그런 내가 대수롭지 않았나 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학교를 가라고 했는데,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할 수가 없었다. 학교엔 삼촌이 아닌 사람이 삼촌이라 거짓말하고 나를 데리고 나간 그 일로 술렁였다. 그 아저씨랑 가서 뭐 했어?라고 묻는 아이도 있었고, 만신창이가 된 내 마음과 표정을 읽은 아이들은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남자애들도 다가와서 며칠 학교 안 나온 것을 관심 가지며 물어오곤 했는데, 남자아이들만 봐도 눈물이 날 것 같고 소름이 돋았다.
시간이 지나 사건 진술과 조사가 마무리되고, 재판으로 넘어갔다. 재판 할 그 당시에 아동 성폭력에 대한 법률이나 그런 게 없었던 시기여서 몇 년 형을 집행해야 하는지 불분명했나 보다. 재판 말에 판사 아저씨가 나를 보고 "저 아저씨 몇 년 감옥에 살게 해 줄까? 5년? 10년?" 하며 물어봤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떨리는 숨울 몰아쉬며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피고인 석에서 그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디 한 번 말해보라고. 난 그 눈을 피하면서 엄마를 바라보면서 "5.... 5년?"이라고 작은 소리로 얘기했지만, 엄마가 옆에서 "쓰읍-하더니, 10년 해야지. 10년이라 얘기해"라고 해서 10년이라 얘기하고 그는 10년 형이 확정되었다. 그럼 형이 끝난 뒤에 풀려났을 때 날 찾아오면 어쩌지라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에 떨려 말이 잘 나오지도 않았다. 말도 안 되는 판결이고 믿기 힘들지만, 그땐 그랬었다. 지금은 아동 성폭력 피해 있으면 심리치료도 지원되고, 진술도 여성 경찰관이 도와주거나 아이들이 힘들어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배려해한다지만 그때의 난 여러 사람에게 여러 번 진술을 반복해서 해야 했다. 나의 고통과 괴로움은 안중에도 없고 다들 저마다의 일을 하느라 최선을 다하는 것인지 나를 도구삼아 이기적인 열정을 불태우는 듯했다.
지금도 뉴스나 사건을 다루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자녀가 그런 험한 일을 당했을 땐 부모의 가슴이 찢어지는데, 드라마만 보더라도 내 자식이 맞고 들어오면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데, 내 부모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아는 가족과는 거리가 있었다. 내가 친구에게 맞고 오면 너도 같이 패라는 말만 들을 뿐, 그 친구를 향한 어떠한 분노도 역정도 없었다.
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 부모는 친부모가 아니라고. 내 진짜 부모는 따로 있을 거라고. 언젠가 나를 찾으러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자랄수록 부모를 닮아가는 나의 얼굴과 몸을 보면 이따금 살이 떨렸다. 그들을 닮은 내 몸이 싫었고 내가 싫어졌다. 인정하긴 싫지만 저 사람들은 미성년인 나의 양육권을 갖고 있었고, 난 경제적 능력이 없으니 단단히 웅크리고 내가 더 이상 찔리지 않게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바짝 세워 내가 나를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목표는, 최대한 내 부모를 이용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때가 오면 독립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난 밝았던 내면을 잃어버린 채 어둠 속으로 무한하게 가라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