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선 똘똘이였고, 학교에선 쭈굴이였다.
부모님 말에 의하면 난 4살에 한글을 익혀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잘 읽었고, 신동이 나왔다며 부모님은 물론 친척들과 마을 사람들까지도 좋아했다고 한다. 옹알옹알 말만 해도 잘한다 잘한다 할 수 있는 4살짜리 아이가 벌써 한글을 떼고 글을 잘 읽는다는 것은 부모님의 자랑거리였고 나중에 공부도 잘해서 서울대 가는거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 우리 집에 손님이라도 오는 날에는 아빠 무릎에 앉아 동화책을 펼치고 소리내어 줄줄 읽었고, 그것이 효도였다. 아빠는 그런 나를 아주 예뻐했고, 나를 본 어른들은 박수를 치며 신통방통하다며 똑똑하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어른들이 칭찬해주는 것에 기쁜 나머지 난 집에 손님이 온다고 하면 "엄마엄마, 나 오늘 무슨 책 읽어?" "이거 읽을까? 이거? 아님 요거?" 하며 읽을 책을 미리 골라놓거나 책을 읽는 연습을 했다. 어린아이였던 나의 세상에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어른들의 칭찬 받는 것이 활력소였고, 예쁨받는 것을 즐기며 어른들 눈에 들기 위해서 애를 쓰며 나의 세상이 무너지지않게 지켰다.
남들이 보기엔 시원시원하고 소탈한 성격의 우리 아빠는 취미 부자였고 늘 주변에 친구들이 넘쳤다. 아빠는 주말이면 낚시도 가고 야영을 가기도 했다. 지금이야 캠핑이라고 부르고 예쁘고 멋진 장비들이 가득하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캠핑이라는 단어보다는 그저 야영한다라고 표현하는게 더 자연스러웠다. 그 외에도 등산을 하거나 철마다 제철나물들을 채집하러 산으로 강가로 가기도 하는 등 전국 팔도로 다녔으니 성격 좋고 가정에 충실하지만 놀 땐 잘 노는 아빠를 주변 사람들과 이웃들 모두가 좋아했다. 아빠가 쉬는 날이면 모여드는 아빠 친구들로 집이 북새통이었다.
그렇게 아빠 친구들이 놀러온다고 하면 나는 외출이 금지되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손님이 오면 난 꼭 집에 있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집에 있다보니, 그 틈에서 나 역시도 자연스럽게 어른들과 어울리며 얘기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생각이 자랄 무렵 친구들과 소란하고 재밌게 노는 것이 아닌 어른들이 오면 재롱떨 듯 책을 읽거나 피아노를 치는 등 어른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였으니, 나의 언어도 아이의 언어처럼 천진난만한게 아니라 어설프게 어른들의 언어가 익숙해져갔다. 그 덕에 또래 아이들과 노는 것이 점점 힘들었고 꼬마였던 나는 또래친구들과 잘 지내는 방법을 잊어가는 대신 어른들과 잘 어울리며 애늙은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맞벌이하느라 바쁜 엄마는 늘 늦은 시간에 나를 데리러 유치원에 오곤 했는데, 그 날은 일이 빨리 끝나서 나를 데리러 왔다 했다. 아이들과 잘 놀고 있을 것을 상상하며 왔던 엄마는 놀이터에 혼자 그네를 타며 놀고 있던 나를 발견했다. 다른 친구들은 실내에서 다 같이 장난감을 가지고 저마다 를 인형놀이, 병원놀이, 소꿉놀이 같은 것들을 하고 있었는데, 난 흥미가 없어서 였을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던 나는 어울려 노는 대신 혼자 노는걸 좋아했고, 소란한 실내를 벗어나 홀로 그네를 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자라나는 와중에도 그렇게 또래들과 동떨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는 날들이 늘어만갔고 그것에 비례해 친구들 역시 나를 이해할 수 없는 날들이 늘어만 갔다.
그 시절 나는 온 동네를 쏘다니며 어른들에게 죄다 인사하며 뽈뽈거렸고 말을 걸었다. 학교 갔다오면 집에 가방을 던져놓고 동네 가게방으로 달려갔는데, 동네 가게방 평상에는 부채를 들고 몸빼바지를 입은 아주머니와 마실 나온 주민 아주머니들과 빙 둘러앉아 재밌는 옛날 이야기도 많이 듣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 엄마아빠랑 어디 갔다왔다 라는 이야기 등을 시시콜콜하게 했다. 한 번 시작한 얘기는 해가 지도록 계속됐고, 엄마는 나를 데리러 가게방으로 오곤 했다. 동네 가게방은 나의 사랑방이었다.
보통은 아 누구누구네 딸이야. 라고 하며 엄마아빠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의 딸이라 칭하지만 나는 반대였다. 우리 엄마아빠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고, "아~ 저 사람이 똘똘이 엄마구나." 라고 되려 반대로 기억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 놈, 말하는 것 좀 보소."
"뉘 집 딸인데 이리 똘똘해."
"어린 것이 당차고 귀여워."
동네에선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그것이 나의 자부심이였으나 그럼 뭐하랴. 아이는 아이다울 때가 가장 예쁜데, 나의 마음은 나이에 비해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었으니.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여자아이들과 오손도손 둘러앉아 얘기할 때 서로 한마디씩 얘기하며 꺄르르 대다가도, 내가 한마디 하면 똑같은 재밌는 이야기를 해도 순간 썰렁해졌다. 저 멀리 사교성이 좋은 친구가 다른 아이들에게 재밌는 얘기를 하면 귀 쫑긋하며 들었다가 나만의 얘기로 살짝 바꿔 얘기해봐도 마찬가지로 재미가 없었다. 나의 말투나 말하는 것이 사뭇 달라서였을까. 그렇게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외로웠다.
지금이야 이래서 그랬을까 라고 생각해보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친구들이 왜 나를 반가워하지 않는지 몰랐다. 나는 재밌는 말과 이야기는 잘 못해도, 이야기는 잘 들어줄 수 있는데, 같이 잘 뛰어놀 수 있는데, 왜 나에겐 관심이 없을까. 라는 물음표만을 지닌채 친구들 무리에 끼지 못하고 겉돌기만 했다. 점점 주눅들어갔고, 더욱 더 어른들 품속으로만 파고 들었다. 동네에선 똘똘이였고 학교에선 쭈굴이가 나였다. 그리고 지금 역시도 그 모습은 그대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