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어른이 한 명 더 생긴 줄 알았다. 그런데 갇혔다.
초등학교 때 살았던 동네 초입에는 커다란 다리가 있었다. 우리 마을로 오려면 꼭 건너야 하는 다리로, 넓은 강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다리가 꽤 넓고 큰 데다가 강도 넓어 동네 친구와 자주 다리 밑으로 놀러 갔었다. 다리 밑에는 놀거리가 풍부했다. 흙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었으니, 한쪽 손을 젖은 흙 속에 파묻고 두꺼비집을 만든다고 나머지 한 손으로 흙을 덮어가며 토닥토닥해 가며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하고 노래 불러가며 놀았다. 어떨 때는 강가에 난 풀잎을 뜯어다가 풀잎을 돌로 찧으며 손에 초록물을 들이기도 했고, 어쩌다 개구리를 만나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도망가지 못하게 손을 동그랗게 덮어 개구리가 손 안에서 뛰는 그 감촉을 느끼기도 했다. 더울 땐 양말을 벗고 발을 담가 괜스레 발가락 꼼지락거리다가 이따금 비가 올 때면 다리 밑에 들어가서 비를 피하면 나의 우산이 되어주는 그 다리는 나의 사계절 놀이터였다.
3학년 때였다. 초겨울이었지만 친구랑 강 따라 걷다가 어디서 그렇게 도깨비풀이 많이 묻었는지 도깨비풀 때문에 따가워서 친구와 같이 겉옷을 벗고 옷에 묻은 도깨비풀을 서로 떼어주고 있었다. 내복을 입은 우리를 사람들이 보면 부끄러울지도 모르니까 근처에 다리가 있었고, 나의 놀이터였던 그 다리 밑으로 들어갔다. 따갑다며 잘 뜯으라며 친구와 둘이서 왁자지껄하게, 내복 위로 겉옷을 뚫고 들어온 도깨비풀을 떼고 있었다. 도깨비풀이 꽤 많이 붙은 터라 한참을 떼어내고 있을 때, 어떤 아저씨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멀쩡하게 생긴 아저씨였는데, 아저씨가 도깨비풀 떼는 것을 도와준다고 해서 아무 의심 없이 친구와 함께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했다. 난 어른들을 좋아하는 아이였으므로 어른들이 다가오는 것이 스스럼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도깨비풀 양이 꽤 많아서 우리 둘이서 다 떼기엔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수락했다. 도깨비풀을 다 떼어갈 때쯤 아저씨가 얘기했다.
" 아저씨가 라면 끓여줄까? "
“ 아저씨가 라면 잘 끓여. 맛있게 끓여줄게.”
" 우리 집에 갈래? "
나와 같이 있던 친구는 엄마가 없었다. 어릴 때 엄마가 아빠와 내 친구를 두고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엄마가 없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이지만 어른스러웠던 내 친구는 음식도 청소도 아주 잘했다. 아빠가 회사에서 집에 올 시간이면 밥을 해놔야 하기 때문에 가야 한다고 했다. 아니면 아빠한테 혼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난 맞벌이하느라 늦게 집에 오는 엄마아빠 때문에 어차피 집에 가면 심심하기도 하고 배도 살짝 고프니 아저씨 집에서 라면 얻어먹고 집에 가면 딱 되겠다 싶다 생각했고, 맛있게 라면 먹을 생각에 신나서 아저씨를 따라나섰다.
지금이야 모르는 사람이 말 걸면 절대 대답하지 마라, 함부로 사람을 따라거나 믿어서는 안 된다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지만 내가 자라던 시절은 그런 구체적인 사회적 인식이 없었다.
처음엔 아무 의심이 없었다. 정말 그 아저씨 집에 가서 라면만 먹고 나왔고 아저씨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같이 우리 집 가는 길에 트럭에서 파는 뻥튀기도 사주고 나를 집에 들여보냈다. 난 어떤 아저씨가 뻥튀기도 사주고 라면도 끓여줘서 맛있게 먹었다고 엄마한테 자랑도 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주말에 엄마아빠랑 집에 같이 있었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우리 집 문 앞으로 왔다.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는 듯, 쉿! 하며 손가락을 입 앞에 갖다 댔고, 나는 아저씨가 왜 말하지 마라는지에 대해 의아했지만 그래도 내게 라면을 맛있게 끓여준 아저씨가 반가웠다.
그 시절엔 지나가는 사람들이 집에 들러 물 한 잔 달라하면 주던 시골 민심 좋은 때였다. 아저씨는 지나가다 목이 말라서 그런데 물 한잔만 달라길래 엄마가 물 한 잔을 작은 다과상에 올리고 간단한 다과를 대접했고 아저씨는 엄마가 차려준 다과상의 물과 다과를 다 먹어 해치우고, 나와는 눈인사를 하고 집을 나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동네 어른들처럼 친해진 어른이 한 명 더 생긴 줄 알았다.
아저씨는 이젠 내 학교에 나타났다. 학교의 선생님한테는 삼촌이라 하고 나를 조퇴시켰고 놀러 가자며 나를 데리고 나갔다. 삼촌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학교에서 관심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조용히 나가고 싶어서 조용히 따라나갔다. 그때 문득 무서웠다. 무서운 아저씨가 아닌데 괜히 선생님한테 얘기했다가 머쓱해지면 어쩌나, 이상한 소문나면 어쩌나 고민만 하다가 용기를 내지 못한 채 눈치를 보며 따라나갔던 것이다. 별일 없겠지. 아저씨가 재밌는 데로 데려가나?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왜? 날 데려가지?라는 물음표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정말 놀러 가는 건가? 하고.
어떻게 그 아저씨 집까지 가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다음 기억으로는 정신 차려보니 그 아저씨 집이었고, 그렇게 난 갇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