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향노루의 City Profile] 후쿠오카, Fukuoka
여행은 못 가서 안달이다. 그런데 가까운 곳으로의 여행은 어쩐지 여행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지금은 얼마나 멀리 떠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런 괜한 고집 때문에 열도로 건너가기까지의 시간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탄 후로 7년이나 걸렸다.
사실 일본과의 관련성 여부가 시국인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다. 단지 더 중대하고 긴급한 문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때문에 일본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글이 조금 망설여지긴 하나 수년 전 다녀온 이야기가 또 못할 말은 아니지 않나.
일본은 사실 한국인들에겐 가장 쉬운 여행지다.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비행기 티켓 값은 제주도행 비행기 티켓보다 싸며, 이동 시간도 짧다. 물가도 엇비슷하다. 나 역시도 후쿠오카를 여행지로 택하는 데 이런 이유가 작용했다. 첫 방문 때 여자친구는 어학연수 중이었고, 갑작스럽게 낸 여름 휴가에 갈만한 곳도 마땅치 않다 보니. 두 번째 방문 때는 여자친구와 함께였는데, 길게 휴가를 내지 못하는 그녀의 상황에서 짧은 기간에 가장 효율적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역시나 일본이었다.
후쿠오카는 일본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장소가 한국인의 방문을 염두에 두고 있고, 그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다. 한국어 표지판, 한국어 메뉴판, 한글 안내 브로셔, 심지어 간단한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점원이 있기도 하다. 한국인의 출현 자체를 특별한 일처럼 받아들이는 이역만리 타국의 작은 도시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이것을 특별한 일이라고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도쿄만 가봐도 후쿠오카만큼 한국인 관광객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지하철부터 역명이 오기 없는 정확한 한국어로 기재돼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인도 외국에서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음이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명동에서 일본인과 중국인에 치여 우리 땅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감정을 떠올리며, 정도는 덜하지만 이들도 약간은 비슷한 느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후쿠오카는 시내 도착 후 한 시간 정도만 지나면 외국이라는 느낌이 옅어지기 시작한다. 인정하긴 싫지만 일본은 한국이랑 매우 비슷하다. 특히 번화가의 모습은 간판의 글자만 다르지 딱히 결정적으로 다른 점을 골라내기 힘들다. 그것이 우리가 그네들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긴 시간 동안 의식 중, 무의식 중에 그들의 행동양식을 배웠기 때문임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 왕실이 자신들은 백제의 후손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결국 우리와 일본은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서로를 배워왔으며, 식민지배가 없었어도 그렇게 남남처럼 달랐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후쿠오카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음식의 도시기도 하다. 돈코츠 라멘의 큰 줄기인 하카타 라멘은 발상지가 후쿠오카의 하카타 지역이다. 모츠나베도 후쿠오카 음식이고, 일본에 명란젓을 널리 알린 곳도 후쿠오카다. 먹어보면 더 놀랍다. 한국인 입맛에 참 잘 맞는다. 한국에서 이런 음식들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익숙해서 그런 것은 분명 아니다. 매우 한국적인 맛을 즐기며 살아온 한국 어르신들에게 일본 음식은 달고 허전한 음식으로 취급받지만 보다 다양한 음식을 먹으며 살아온 젊은 세대로서 느끼는 것은 우리가 즐기는 맛과 일본이 즐기는 맛이 굉장히 비슷한 인상이고, 후쿠오카 음식은 더욱 그랬다.
하지만 한국과 가깝고 비슷한 만큼 분명히 다른 무언가가 나타났을 때 느끼는 이질감은 더욱 강했다. 지극히 일본스러운 1~2층 주택이 늘어선 골목, 뜬금없이 등장하는 신사,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일본어 표기를 볼 때가 그랬다. 이는 일본 어디서든 느낄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도 특히나 한국과 유사한 후쿠오카라서 더 분명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유명한 히젠도. 명성황후를 시해할 때 사용한 칼로 가와바타 지역의 구시다 신사에 보관 중이다. 시해에 가담한 낭인이 죄책감을 느껴 신사에 칼을 맡기고 명성황후를 형상화한 불상을 만들어 모셨다는 스토리… 그네들의 양심을 기대했으나 굳게 닫힌 셔터 뒤 한국어로만 기재된 표지판은 결국 이들과 우리는 개인 대 개인으로서는 함께 있을 수 있고 친해질 수도 있으나 집단 대 집단으로서는 도저히 융화될 수 없는, 너무나 이질적인 존재라는 사실로 내 뼈를 난타했다.
사실 나는 그 뒤로도 일본 여행을 갔다. 도쿄에 한 번 다녀왔고, 후쿠오카를 재방문했다. 매번 즐거웠다. 방사능 공포라던가 혐한 세력 등 개인 체감의 영향이 큰 문제를 차치하면 일본이 한국인들에게 효율적인 여행지로서 좋은 곳이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대두된 한일 문제만 해결되면 나는 또 갈 의향도 있다. 일본 문화에는 내가 선호하는 성향들도 다수 있음까지 부인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후쿠오카가 확실하게 심어준 그들과 우리의 관계는 언제 어디서나 내 머릿속,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을 듯하다. 부인할 수 없는 동질감 속 부인할 수 없는 이질감이라는 말이 안 되는 말이지만 말이 되는 그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