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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향노루 Jan 21. 2020

이곳은 왕밤빵이다

[사향노루의 City Profile] 파리, Paris

*경험적 오류, 편견에 의한 오류 등 비객관적 내용을 다수 내포하고 있음


파리는 아마도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 중 하나일 것이다. 파리는 많은 한국인들의 가슴속에 패션, 음식, 예술 등 다양한 방면에서 세련됨의 상징으로 존재하고 있다. 나 역시 다르지 않게 생각했다. 파리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는.


NIKON D80 +  AF-S DX Nikkor 18-55mm F3.5-5.6 / PANASONIC LUMIX LX7
PANASONIC LUMIX LX7


파리를 처음 만난 순간은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로 건너갔는데 내가 탄 열차가 해저터널을 통과한 건지 타임머신을 통과한 건지 아리까리했다. 현대적인 건축미가 있던 세인트 판크라스 역과 달리 파리 북역은 낡고 복잡했다. 거기에 소매치기 등 잡범들이 많다는 여행책자의 안내가 더해져 괜한 긴장감까지 유발했다. 게다가 지하철과 거리는 또 얼마나 더러운지… 쓰레기통은 모두 쓰레기가 넘쳐흘러 난장판이었고 곳곳에서 악취 체험도 할 수 있었다.  


NIKON D80 + SIGMA 17-70mm F2.8-4 DC MACRO OS HSM


그래도 그런 기분이 파리 여행의 재미까지 앗아가지는 못했다. 센강의 찌린내를 맡았을 때 다시 한번 충격받기는 했으나 그래도 파리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랑할 만한 매력이 있는 도시였다. 괜히 예술가들의 총애를 받은 건 아니지 싶다. 낡은 철제 난간이나 길가에 늘어선 평범한 건물마저 어쩐지 예술적으로 느껴진 건 기분 탓이겠지만.


NIKON D80 + SIGMA 17-70mm F2.8-4 DC MACRO OS HSM
NIKON D80 + SIGMA 17-70mm F2.8-4 DC MACRO OS HSM


파리는 참 많은 음식이 있는데 사실 비싸다. 물가도 기본적으로 비싼데 식문화가 고급이기까지 해서 더 비싸다. 미식의 나라에 와서 미식을 경험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괜찮다.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빵이 있으니까. 빵을 특별히 싫어하는 사람만 아니라면 굳이 비싼 음식 안 먹어도 파리에선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솔직히 프랑스에서 빵을 먹어 본 이후 한동안 한국 빵은 거의 입에 대지 못했다. 왜 한국 빵은 맛있을 만한 재료를 때려 넣어도 별 거 넣지도 않은 프랑스의 동네빵집 바게트도 못 따라갈까..


NIKON D80 + SIGMA 17-70mm F2.8-4 DC MACRO OS HSM


특히 나름 주머니가 좀 두둑했던 2015년 두 번째 여행에서는 거의 빵 홀릭 수준이었다. 폴에서 운 좋게 갓 나온 뺑 오 쇼콜라를 먹게 됐을 때는 정말 너무 맛있어서 한입 먹을 때마다 맛있다고 계속 혼잣말을 뱉었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아마 정신 나간 사람 같지 않았을까.... 뭐, 오죽 맛있으면 내가 손에 든 사과파이를 새가 채가려고 했을까. 그리고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열린 빵 축제를 만난 것은 가히 축복이었다. 수십 명의 제빵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끊임없이 빵을 구워내면서 커다란 천막이 빵 냄새로 가득했다. 물론 맛은 말 안 해도 예상될 것이다..


NIKON D80 + SIGMA 17-70mm F2.8-4 DC MACRO OS HSM


앞서 밝을 때 만난 파리의 모습에 대해 악평을 많이 했는데, 밤을 이야기하자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파리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어둠이 파리에 가져오는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가장 먼저 쓰레기가 잘 안 보이고, 초록색 센강물이 여느 맑은 강물과 다름없이 보이기 시작한다. 농담 같지만 진심이다. 그 ‘노이즈’들이 사라지면 그때 비로소 진짜 파리의 모습에 집중할 수 있다.


NIKON D80 + SIGMA 17-70mm F2.8-4 DC MACRO OS HSM


그리고 파리를 수놓는 그 많은 불빛들. 많은 사람들이 파리의 야경이 아름다운 것이 파리가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단언컨대, 아니다. 파리의 조명들을 유심히 살펴보라.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만든 것이 없다. 에펠탑이나 루브르처럼 유명한 건물들뿐 아니다. 거리에 늘어서 있는 건물들도 자신들의 가장 멋진 곳을 가장 멋지게 비추고 있다. 서울도 야경이 꽤 훌륭한 도시지만 서울의 야경이 각자의 생존을 위해 켜진 빛으로 만들어진 피동적 산물이라면 파리의 야경은 순수한 미적 목적으로 완성된 능동적 산물이다. 태생이 근본적으로 다르니 느낌도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NIKON D80 + SIGMA 17-70mm F2.8-4 DC MACRO OS HSM


종합하면 파리는 ‘왕밤빵’인가… 빵이 끝내주고 밤이 끝내주는 도시. 그게 파리다. 파리에 간다면 크루아상과 뺑 오 쇼콜라만으로 한 끼를 해결하고, 어둠이 내린 예술의 다리(Pont des Arts)에서 파리의 야경을 감상하며 와인 한 잔 기울이는 기회는 그냥 넘기지 말아야 한다.


NIKON D80 + SIGMA 17-70mm F2.8-4 DC MACRO OS HSM


[번외로 파리는 인셉션 놀란 덕후들에게 꽤 흥미로운 도시다. 돔이 장인의 소개로 아리아드네를 스카우트한 곳이 바로 파리. 여타 영화들은 파리의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그러나 인셉션은 도시의 모습을 자유롭게 변주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진짜 파리고 어느 것이 창조된 것인지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돔이 아리아드네와 함께 드림머신으로 처음 꿈을 공유하는 장면에서 등장한 비라켕 다리(Pont de Bir-Hakeim)가 대표적이다. 영화에선 아리아드네가 거울을 마주 보게 해 철제 기둥이 늘어선 길을 창조하는 것으로 묘사됐는데, 그 창조물이 실존하는 비라켕 다리의 모습이다. 구석구석 인셉션의 흔적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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