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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향노루 May 06. 2020

모교 구경

어린이 시절을 되짚다 어른임을 실감했네?

본가가 안산이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안산에서 모두 다녔다. 말하자면 안산 교육의 결정체다. 대학교까지 안산에서 다닐 줄은 몰랐다.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그냥 읽으면 어쩐지 왜색이 짙은 이름 같으나 Education, Research, Industry Cluster in Ansan, 산학연 협력체의 약자다. 문과인 나는 지극히 공대스러운 그 이름이 맘에 안 들었지만. 우연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 2005년 입학 후 입주한 아파트가 내 대학교 바로 옆이었다. 학교를 다닐 때만큼은 나는 학교와 운명의 짝인 것처럼 함께했다. 집도 가까운데 유독 나는 캠퍼스 라이프가 즐거웠다. 다른 친구들은 종강을 기다리는데 나는 개강을 기다렸다. 수업이 없는 날도, 종강 이후에도 학교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한 때. 영원이 학교에 머물 것 같았던 기분도, 졸업을 하더라도 학교가 집처럼 편하게 느껴질 것이라 굳게 믿었던 나의 생각 참으로 어리디 어렸다. 졸업한지도 어언 만 8년을 넘겼다. 졸업 후 3년 정도는 아는 후배들도 많이 있어서 학교에 자주 갔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조차 졸업하고 학교를 떠나자 학교에 들를 명분이 없었다.


SIGMA fp + 24-70mm F2.8 DG DN | Art / 135mm F1.8 DG HSM | Art


이번에 캠퍼스를 들른 것도 거의 2년 만인 듯하다. 아예 발길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저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길이었을 뿐이었다. 간만에 차를 학교 주차장에 세웠다. 분명 잘 아는 공간인데 심하게 어색하다.


한창 북적거려야 할 캠퍼스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방학처럼 한산하다. 선배들과, 동기들과, 후배들과 커피나 (몰래) 맥주를 들이켰던 공원과 잔디밭은 사회적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 비닐 띠를 둘러놓았다. 최근 이곳저곳에서 본, 공원을 두르고 있는 출입금지 비닐 띠보다 어쩐지 더 이질감이 느껴진다.


SIGMA fp +  135mm F1.8 DG HSM | Art


그런 특별한 변수를 제외하더라도 익숙한 광경 속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광경들이 눈에 띈다. 어떤 건물들은 외관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한창 공사 중인 건물도 있다. 없던 표지판도 많이 생겼다. 차가 다닐 순 없었지만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있던 학생회관 앞은 아예 도로를 없애고 보도블록을 깔았다. 항상 잘 정리돼있던 화단들에는 홀씨를 가득 머금은 민들레들이 흔들리고 있다.


SIGMA fp + 24-70mm F2.8 DG DN | Art


안산에 사는 후배를 만나 커피 한 잔 하며 수다를 떨었다. 학교에서 시험을 잘 봤는지, 주말엔 뭐하고 놀 건지, 저녁에 애들 모아서 술이나 먹고 노는 건 어떨지 그런 얘기를 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고 말하기엔 너무 오래 지났다. 이제 대화는 돈 버는 얘기, 세상 사는 얘기다. 재미있게 사는 것도 재능인데 우리는 재능이 부족한 것 같다는 슬픈 대화를 웃으면서 한다. 다른 어른들만큼 어른다워지진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옛날 그 어린이 시절을 생각하면 많이 컸다.


SIGMA fp +  135mm F1.8 DG HSM | Art
SIGMA fp + 24-70mm F2.8 DG DN | Art


집에 돌아가기 위해 다시 주차장으로 갔다. 학교는 코로나19 확산을 걱정하여 외부인의 출입에 민감한 상황이다. 경비 아저씨가 입구에서 나와 후배에게 학생증 있냐고 묻는다. 졸업생이라니 1초 정도 멈칫하다 보내준다. 마스크도 썼는데 눈만 봐도 이제 학생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어른임을 실감하는 대화를 하고 오니 갑자기 학교가 어색함을 넘어 낯설다. 이젠 내가 자연스럽게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학교와 나의 관계는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SIGMA fp +  135mm F1.8 DG HSM | Art
SIGMA fp + 24-70mm F2.8 DG DN |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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