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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향노루 Mar 28. 2022

느리게 언 얼음

[사진망상 #5]

Fujifilm X100F


시원하고 달달한 게 먹고 싶었다.

냉장고 한켠에 뉘어있는 사이다가 생각났다.

신나게 달려가 꺼내보니 얼어있다. 젠장.


마침 날도 좋겠다 볕이 잘 드는 곳에 세워뒀다.

10분, 15분이면 녹겠지.

하지만 얼음은 한 시간을 넘어 두 시간이 지나도록 줄어들 줄을 몰랐다.

손으로 꽉 쥐어봐도 금조차 가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사이다를 냉장고에 넣어놓은 것이 약 3주 전.

적어도 며칠 동안 서서히 언, 아주 치밀한 얼음이겠구나.

결국 나는 저녁이 다 돼서야 찰랑이는 사이다를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관계라는 게 얼음이랑 참 비슷하다.

어떤 일로 일순간 차가워지면 또 그만큼 잘 녹는다.

하지만 서서히 쌓인 차가운 관계는 아무리 따스한 온기로 감싸도 소용없다.

빈틈없이 다져진 내면의 냉기가 온기에 녹아내린 표면마저 다시 얼려버린다.


무언가에 대한 내 마음이 느리게 언 얼음처럼 차갑고 단단하다는 게 서글프다.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었는데.

이렇게 기억하게 되길 원한 적 없었는데.

따뜻했던 기억들을 한껏 떠올려봐도 기억의 시간이 현재에 가까워짐에 따라 결국 식어버린다.


그러니까 잊지 말자.

느리게 언 사이다는 여간해선 녹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얼기 전에 녹여줘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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