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 여행 경험에서 받은 특별한 영향
*축덕주의
나에게 유럽이란... 이렇게 시작하니 뭐 대단한 여행자인 것처럼 보인다. 여행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나 여행이 직업인 사람들, 매년 휴가라도 꼬박꼬박 외국으로 나간 사람들에 비하면 대단할 것은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하면 그래도 꽤 많은 시간을 외국에서 보내봤다. 특히 유럽에서 보낸 시간을 총 합하면 네 달이 넘으니 평범한 사람 기준으론 분명 적은 건 아닐 테다.
오늘 풀 이야기는 세 번의 유럽행 중 앞선 두 번이다. 2009년 전역 후 떠났던 여행과 2015년 퇴사 후 떠났던 여행. 여자 친구를 비롯해 지극히 한정된 몇몇 사람들에게만 했던, 심지어 가족들도 다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별로 보는 사람도 없는 여기에 담아보고자 한다.
내가 2009년 유럽행을 결심한 것은 순전히 축구 때문이었다. 대학 입학 직후부터 축구 전문 기자를 꿈꾸며 포털에 올라오는 축구 기사를 매일매일 하나도 빠짐없이 정독했던 나지만, 축구와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군생활 2년은 대단히 큰 위기였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믿을 수 없게도 전역할 때 즈음 내가 가진 축구에 대한 관심은 입대 전에 비해 크게 작아져 있었다. 고작 이 정도 관심으로 축구로 먹고사는 직업을 소화할 수 있겠나 싶을 정도로. 그때 내린 특단의 조치가 유럽여행이었다. 아, 물론 돈은 없었다. 형이 유럽 여행을 간다는 말에 얼렁뚱땅 숟가락을 얹어봤는데, 통 큰 결심을 하신 부모님 덕분에 무려 두 달 반이나 여행을 떠났다.
모든 일정을 축구를 기준으로 짰다. 지금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대책 없었는데 옷가지 등 당연히 가져가야 하는 것 이외에 내가 준비한 것은 유레일패스와 보고 싶은 경기가 빼곡히 적힌 캘린더뿐이었다. 미리 구해놓은 티켓도, 티켓을 살 수 있는 확실한 방법도 전혀 없었다. 그 당시는 어차피 외국인의 예매가 거의 불가능이나 마찬가지긴 했지만, 그래도 대책 없어 보이긴 매한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았는지 거의 매주 축구를 봤다. 경기가 있는 주말엔 축구를 보고 경기가 없는 날에는 남들처럼 여행을 하거나, 축구장을 찾아다니며 구경했다. 토트넘, 잉글랜드, 파리 생제르맹,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피오렌티나 등 남들은 평생 한 번 직관하는 게 꿈인 팀들의 경기를 줄줄이 봤다. 밀월, 에스파뇰, 코블렌츠, 쾰른 등 평범한 여행자는 관심도 안 가질만한 팀의 경기도 봤다. 구경만 간 경기장까지 망라하면 20개 이상 될 듯하다.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다.
특단의 조치는 그야말로 특효약이었다. 이 여행으로 축구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났을 뿐 아니라 축구를 보는 눈도 넓어졌다. 2부 리그, 4부 리그도 보고 1부 리그들의 핵노잼 경기도 보면서 유럽 리그라고 다 재밌는 것도 아니며, 반드시 수준이 높아야만 재밌는 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됐다. 자기소개서에 쓸만한 근사한 경험이자 에피소드이기도 했다. 내가 축구 기자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였다.
그렇게 3년 5개월이 지난 2015년, 나는 축구기자로서의 삶을 포기했다. 분석하고 글을 쓰고, 나 자신이나 타인의 생각을 여러 사람에게 전하는 것은 내 적성에 딱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런 일이 좋다. 문제는 축구기자라는 직업이었다. 축구 전문가로서 더 이상 발전할 수 있다고 느끼지 못했고 축구 기자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삶의 패턴이 나에겐 너무 버거웠다. 막판엔 일에 진심으로 질리기까지 했다. 솔직히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게 그냥 나였다. 단지 축구를 좋아하다 보니 그것을 깨닫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그만두면서 참 후련하기도 했지만 씁쓸하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축구 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 시간보다 축구 기자로 살았던 시간이 더 짧은 거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퇴사 후 여행을 떠났다. 유럽으로. 하지만 내 ‘퇴사 여행’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단순히 머리를 식히고 재충전하기 위해서 간 여행이 아니었다. 아마 내 2015년 여행 코스를 보면 다른 사람들은 돈이 썩어나냐고 할 테다. 두 달 반에서 한 달 반 조금 못 미치는 일정으로 압축되면서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2009년 첫 여행과 거의 비슷한 국가, 거의 비슷한 도시를 돌았다. 유럽에 다른 갈 곳도 많다는 건 당연히 알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직서를 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길에 들어서게 만든 그곳을 다시 가야 내 인생 1막을 닫을 수 있겠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날 미치게 만들었던 그 경기장에 가서 “오랜만이야. 네가 열심히 도와줘서 꿈은 이뤘는데 그게 평생은 안 되겠더라고. 아무튼 도와줘서 고마워. 덕분에 좋은 경험 했어”, 이런 식의 인사를 전하는 격이다. 그러고 나면 정말로 이 실패한 꿈을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다시 유럽에 갔다.(참고로 이번엔 돈이 있었다...) 축구를 많이 보지는 않았다. 리스본에서 스포르팅 경기, 바르셀로나에서 FC바르셀로나 경기를 봤다. 정말로 내가 예전에 갔던 몇몇 경기장에도 갔다. 유치하게 마음속으로 인사를 하고 그러진 않았다. 그냥 어딘가에 앉거나 멍하니 서서, 경기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한참 바라보다 돌아섰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니 이상하게 정말로 뭔가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근본은 안 바뀐다고 어딜 가나 축구와 관련된 것에는 시선을 빼앗겼다. 하지만 더 이상 축구는 날 달아오르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질리게 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꽤 좋아하는 어떤 것일 뿐이었다.
기자로 일할 때 초등 축구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감독을 인터뷰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재능 없는 애들 막 혼내고 연습 죽어라 시키면서 억지로 선수로 만들어봐야 소용없어요. 그런 애들이 다치거나 실력 부족으로 진학 못해서 낙오하면 팬도 못되고 축구를 외면해요. 축구를 보면 힘든 생각만 나거든요.” 그런 면에서 다행인 것은 일종의 낙오자인 내가 팬으로는 남았다는 것이다. 나름의 생각으론 마무리랍시고 했던 여행이 꽤나 괜찮은 선택이었던 덕분인 듯하다.
그래서 나에게 유럽이란 내 인생의 일부분이다. 축구기자가 된 것도 유럽 여행 덕분이고 허무한 실패로 끝난 꿈을 잘 덮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유럽 여행 덕분이다. 여행을 좋아하게 된 것도, 여행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도 알게 된 것도 유럽 덕분이다. 내가 살아온 길, 지금의 내가 가진 어떤 것이 축구 때문에 시작된 이 두 번의 유럽 여행이 아니었으면 아마 완전히 달랐겠지 싶다. 그래서인지 유럽여행사진을 뒤적이다 보면 축구와 끈덕지게 얽힌 내 지난 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죽기 전에도 아마 비슷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