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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향노루 Dec 27. 2019

그녀들이 내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알려주더라

<캠핑클럽>이 비춰준 내 모습

*이 글은 9월 28일에 작성됐습니다. 철 지난 느낌 주의.


아마 다른 글을 통해서 풀어내게 되겠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평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특출한 재능이 있었거나 뭔가 잘난 구석이 있었다는 뜻은 아니고, 또래의 보편의 관심사에 큰 관심이 없다던지 하는 독특한 구석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중 하나가 바로 여자 아이돌(또는 걸그룹)에 대한 관심이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음악 장르와 관계없이 예쁜 여자 가수는 모든 남학생들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난 어쩐지 시선이 가질 않았다. 지금이야 우후죽순 생겨난 걸그룹이 너무 많아서 구분조차 안되고 다 비슷해 보인다는 이유라도 있지만, 그때 자라난 무관심의 근본은 정확히 모르겠다.



어찌 됐든 나는 관심이 없었다. 핑클과 SES 지존의 자리를 놓고 다툴 때 나는 강 건너 불구경도 아니고 강가에 나와보지도 않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캠핑클럽을 챙겨 보게 된 건 사실 나 스스로도 좀 예상치 못한 일이긴 했다.


1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이효리 때문이었다. 이효리라는 사람에게 흥미를 가지게 된 건 그녀의 생각과 행동을 자세히 보게 된 이후부터였다. 처음 효리네 민박이 시작될 때 그 프로그램을 본 건 순전히 이효리와 이상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보이는 행동이 재밌어서였는데 그 방송을 통해 내가 전혀 몰랐던 이효리의 모습을 봤다.



새삼스레 예쁘더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녀가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할 줄 알 뿐 아니라 그런 솔직함의 바탕이 자신의 위치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냉철한 객관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TV에 흔히 나오는 연예인들처럼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해 무작정 예찬하지 않고, 자신이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제주에서의 여유로운 삶이 가능한 것임을 잘난 척하지 않고 말할 줄 안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그리고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 남긴, 손석희를 머쓱하게 한 그 명언, “가능한 것만 꿈꿀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를 들으며 처음으로 연예인의 신분을 가진 누군가에게 약간의 경외감 같은 걸 느꼈다.



그래서 보기 시작한 캠핑클럽, 그런데 나는 캠핑클럽을 볼 때마다 이상하리만치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정말 이상했다. 나는 그녀들이 채널만 돌리면 나오던 시기엔 별 관심도 없었는데 왜 시선을 뗄 수가 없는지, 왜 자꾸 중고등학생 시절이 생각나는지, 왜 추억여행을 하는 기분이 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들이 철없던 젊은 시절 어떻게 행동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오랜 기간 함께하고 오랜 기간 떨어져 있다 다시 만난 그들의 행동은 분명 예전과는 다른 어른의 모습임을 서로 느끼고 있었다. 이해의 폭이 넓어져 서로 유들유들하게 맞출 줄 알고, 어린 마음에 자존심 챙기느라 숨겼던 마음을 속 시원히 꺼내 보이기도 하고, 그땐 생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삶을 살고 있는 그런 모습. 카메라 앞에서 한껏 자신을 뽐내던 예전과 달리 무대에 서는 것을 자신 없어하는 모습과 한창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하던 곡인데 한 곡 땡기고 헉헉거리는 모습. 무엇보다 사과하는 법을 배운 그 모습.



나에게 캠핑클럽은 그랬다. 추억의 아이돌이 나와 지금의 모습을 털털하게 보여주며 그들의 옛 모습과 그런 그들을 좋아했던 자신의 감정과 행복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철없고 모나고 자존심만 강하고 사과도 할 줄 몰랐던 미성숙한 나에서 벗어나 조금은 어른이 된, 그렇게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된 나를, 거울을 보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곧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었다.


모든 화를 다 챙겨보진 못했다. 습성 자체가 시간 지켜 TV 앞에 앉는 걸 잘못하는지라 본방 몇 번과 운때가 맞아떨어진 재방송들을 봤을 뿐이다. 하지만 볼 때마다 평범한 예능처럼 웃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전보단 어른스러워진 내가 보이고, 어른스럽지 못하던 과거의 몇몇 순간들이 떠오르며 괜스레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기도 했다.



결국 캠핑클럽이 나에게 알려준 건 그녀들의 시간뿐 아니라 내 시간도 똑같이 많이 흘렀다는 것이었다. 내 나이도 벌써 서른셋이다. 누군가는 또 서른셋은 한창 젊은 거라 하겠지만 노인의 단계에 들어가기 전까진 시간의 절대량은 적용되지 않는다. 지나온 시간은 쏜살같고 앞으로의 시간은 구만리길 같긴 매한가지다. 뭐 그렇다고 이 정도 어른 된 정도에서 만족하면 쓰겠나. 내가 그런 식으로 내 어른스러움에 만족하면은 인마! 그때는 꼰대가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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